“죽음에도 차별 있다는 거 아시나요?”…한 하청 노동자의 죽음_승리와 패배에 관한 표현_krvip

“죽음에도 차별 있다는 거 아시나요?”…한 하청 노동자의 죽음_포키 발디_krvip


"죽음에도 차별이 있다는 거 아시나요?"

"저희 아버지가 젊은 청년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어서, 저희 아버지가 노조에 가입돼있지 않아서, 그렇게 아버지 사망사고는 우선순위와 의지의 문제로 항상 차별받고 있습니다. "

'세계 산재 추모의 날'을 맞아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마련한 기자회견에서는 산업재해와 관련된 갖가지 의제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습니다. 이 가운데 소속 노조원도 아닌, 젊은 청년도 아닌, 한 하청 노동자의 죽음을 말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나선 이가 있습니다.

사망한 하청 노동자의 아들입니다.

수차례 발언대에 섰던 그였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사고를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울컥하기를 반복했습니다. 2019년 10월 30일, 아버지인 故 정순규 씨의 사고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세계산재사망 추모의 날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
■ 조사 주체마다 사망 원인 '제각각'…재조사는 '전무'

그의 아버지는 당시 경동건설이 시공하는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하청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로 옹벽의 거푸집 해체 작업을 마치고, 콘크리트 면고르기 작업을 하던 중 사고가 났습니다.

"1m 높이에서 사람이 추락했다"라는 신고를 접수하고 소방대가 출동했지만, 병원으로 실려간 정 씨는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정 씨의 사망사고에 대해 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부산경찰청의 조사결과가 각각 달랐습니다. 쟁점은 정 씨가 추락한 높이와 사고 발생 지점, 추락 방향이었습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정 씨가 '3.8m 높이'에서 안전난간 바깥으로 추락했다고 봤습니다. 경찰은 그라인더의 철심을 제거하는 작업 중 '4.2m 높이'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고했습니다.

다만 노동부는 '2.15m 높이'에서 수직 사다리 이용 중 추락했다고 봤는데요. 나머지 두 기관이 조사한 수치의 절반밖에 안 되는, 이 결과는 수직 사다리 이용 중 2m 높이에서 추락했다는 경동건설 자체조사와 가장 비슷한 수치입니다.

이처럼 제각각인 결과에 대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노동부에 재조사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부산지방노동청은 재조사 등을 고려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지만,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신축공사를 위해 작성된  ‘관리감독자 지정서’. 피고인 측이 정씨가 현장의 안전관리 감독자라고 주장하며 제출했지만  위조인 것으로 드러났다.
■ 재판 쟁점은 '추락 위치'…어떤 노동자의 죽음도 '외면받지 않게'

결국,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게 됐는데 재판의 쟁점은 정 씨의 추락 위치입니다. 추락 위치에 따라 추락한 경위와 기업의 책임도 달라집니다. 피고인 측인 하청업체는 정 씨가 2m 높이의 수직 사다리에서 떨어져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사고 현장에 CCTV나 목격자가 없었던 점 등을 미뤄 피고인 측에 추가 내용을 요구한 상황입니다. 또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측이 정씨가 현장의 안전관리 감독자라고 주장하며 제출했던 '관리감독자 지정서'는 유족이 필적감정을 맡긴 결과 위조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유족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차일피일 미뤄지는 재판 일정입니다.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하청업체 대표와 안전 관리자 3명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사고가 난 지 16개월이 다 되도록 1심 재판 결과조차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등의 이유로 재판 일정이 수차례 연기됐기 때문입니다.

다음 재판을 앞두고 있는 유족들은 결국 이는 노동부의 '초동수사 부실'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사전 안전장치 마련 등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건설 현장의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