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슈 중심 보도”…모방 범죄 부추기는 언론 [탐사K][‘약’한 사회, 마약을 말하다]_베토가 세상을 떠났다_krvip

“연예인·이슈 중심 보도”…모방 범죄 부추기는 언론 [탐사K][‘약’한 사회, 마약을 말하다]_베토 카레로 구단주 사망_krvip


"법원에서 내려 주신 판단에 대해 존중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앞으로 남은 절차에 성실히 임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소명들을 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배우 유아인, 2023년 5월 24일 마약 투약 혐의 구속영장 기각 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마약 7종'을 투약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배우 유아인 씨.

올해 마약 관련 이슈 가운데 가장 화제를 모았던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대부분 국민들은 마약 이슈를 언론을 통해서 접하게 됩니다.

그러면 과연 언론은 마약 문제를 어떻게 다뤄왔을까요? 한번 살펴봤습니다.

■ 주요 언론 10년 간 기사 분석…"연예인·이슈 중심 보도가 1/4 이상"

KBS 탐사보도부는 지난 10년 동안의 주요 언론사 11곳(KBS, MBC, SBS, YTN,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연합뉴스)의 마약 관련 기사 2만 6천718건을 분석했습니다. (해외 기사, 칼럼, 중복 기사, 영화 등 마약 소재 콘텐츠 소개 기사 등 제외)

기사 키워드를 정리하다 보니 일정한 경향성이 발견됩니다.

우선 마약과 관련된 연예, 정치, 경제 관련 유명인과 그 가족들과 관련된 기사들이 많았습니다.

연도별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2013~2023년 마약 관련 유명인·이슈 키워드 1~3위〉

2013년 박시연, 장미인애, 이승연 2014년 에이미, 조덕배, 손호영
2015년 김무성 사위, 김성민, 에이미 2016년 김성민, 린다, 아이언
2017년 탑, 남경필 아들, 가인 2018년 양진호, 정석원, 이찬오
2019년 버닝썬, 박유천, 황하나 2020년 휘성, 이재용, 박유천
2021년 이재용, 황하나, 하정우 2022년 돈스파이크, 에이미, 한서희
2023년 유아인, 남경필 아들, 돈스파이크

2019년은 버닝썬이라는 특정 이슈 기사가 도드라지게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유명인 관련 기사일수록 노출 빈도가 높고 자세한 내용이 소개됐고, 그렇지 않은 마약 관련 기사의 경우 단순 마약 사건 발생 기사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분석 대상 기사 가운데 유명인이 언급된 기사 수는 7,224건으로 무려 27%, 전체 기사의 1/4이 넘는 수치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유명인 중심의 마약 보도는 마약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보다는 선정적 접근으로 흐르기 쉽다고 지적합니다.

박성수/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연예인이라든지 어떤 특정인 또는 공인이 마약을 투약했다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실제 일반인보다는 특정 연예인이나 공인들이 주로 마약류 사건 보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죠."

이해국/가톨릭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연예인이 마약을 해서 잡혔다. 수갑 차고 이런 모습이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치료 시설에 가기로 했다. 치료를 잘 받았다. 이런 것이 나와야 하는 거죠. 그래서 마약 중독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파하고 국민의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개념으로 다가오지 않는 거죠. 선정적인 보도를 지양하고 도대체 어떤 문제인지 어디서 (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해야 하거든요. 지금의 마약 보도는 그냥 뭐 잡혔다. 뭐 누구랑 어디서 했다. 호텔에서 뭘 했다. 이런 식으로 선정적으로 나갈 뿐이고."

■ "마약 이렇게 사고 이런 효과가 있어요"…마약 광고하나?

마약 관련 기사들은 때로 현장 취재라는 명목으로 너무 상세한 정보를 다뤄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매년 펴내는 '주요 시정 권고 사례집'에 나타나는 마약 보도와 관련한 단골 지적 사항이기도 합니다.

언론중재위원회 2022 시정 권고 사례집 中
우선 마약을 사는 방법을 너무 상세히 묘사해 모방 범죄의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또 마약의 효능을 너무 상세하게 묘사하거나 주사기 등 도구들을 직접 보여주는 것은 마약 미경험자에게는 호기심을, 마약 경험자에게는 '갈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천영훈/인천참사랑병원 원장
"자살 관련 보도를 하는 데 있어서 언론 윤리 준칙 같은 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방법에 대해서 표현하지 말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마약이 이런 것이 진짜 필요하다니까요. 모 언론사에서 예전에 구글링해서 마약을 구하는 것을 시연했다니까요. 물론 의도는 알겠어요.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다라는 것. 그런데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서 와 저 방법이었어? 특히 청소년 측에 있어 퍼지는 것에 있어서는 잘 고민하셔야 해요. 전문가들과 상의하셔서 보도 행태를 좀 바꾸셔야 된다는거죠."

"또 제일 큰 문제는 마약 보도할 때 맨날 뉴스에서 가루 쌓아놓은 것. 그 주사기 찍 하고 나오는 것 보면 저희 환자들 정말 미치려고 그래요. 필로폰 했던 사람은요. 그 장면만 봐도 막 벌렁벌렁하거든요."

■ 화제를 따라가는 언론…이제 긴 안목으로 마약 문제를 바라볼 때

사실 화제를 따라가는 것은 언론의 근본 속성이기도 하기에 이런 기사들이 완전히 없어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화제를 따르는 것이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마약 문제는 우리 일상과 보다 가까워졌습니다.

단순한 흥미 거리가 아닌 진짜 문제로 보다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과 신문 윤리 실천 요강에도 마약 보도와 관련된 규정이 마련돼있습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8조(범죄 및 약물묘사)

① 방송은 범죄에 관한 내용을 다룰 때에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폭력·살인 등이 직접 묘사된 자료화면을 이용할 수 없으며, 관련 범죄 내용을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방송은 범죄의 수단과 흉기의 사용방법 또는 약물사용의 묘사에 신중을 기하여야 하며, 이 같은 방법이 모방 되거나 동기가 유발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③ 방송은 마약류의 사용 및 이로 인한 환각 상태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서는 아니 된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13조(어린이 보호)

언론인은 어린이의 건전한 인격 형성과 정서 함양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특히 음란하거나 폭력적인 유해환경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

④ (유해환경으로부터의 어린이 보호) 언론인은 폭력, 음란, 약물사용의 장면을 미화하거나 지나치게 상세하게 보도하여 어린이에게 유해한 환경을 조성하지 않도록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아예 자살 보도 준칙과 유사한 '마약 보도 준칙'이 마련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박진실/마약 전문 변호사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르면 굉장히 손쉽게 그 선택을 한다는거죠. 그 대가가 어떤지를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더라고요. 우리가 언론에서 보는 것은 그냥 유명 연예인 마약 사건, 집행유예로 나오더라. 그 사람들은 판매자들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본인의 행동을 잘 모르는거예요. 마약 사건 집행유예 받네! 이렇게만 단편적으로 주어지다 보니까 그 위험성을 몰라서 검거되고 저 이 정도로 위험한 사건인지 몰랐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서 더 안타깝다는 거죠."

마약류 중독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마약류 중독 상담 전화 ☎1899-0893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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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김용덕, 최준혁,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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