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바보 OOO입니다”…세브란스 교수 폭행에 전공의들 ‘탄원’_파판 쿠로빙고_krvip

“저는 바보 OOO입니다”…세브란스 교수 폭행에 전공의들 ‘탄원’_어떤 서비스가 가장 많은 돈을 버는지_krvip

"회진 도는데 마음에 안 드신다고 차트를 잡고 있던 손을 핸드폰으로 내리치셨어요. 손목을 맞아서 멍이 들기도 하고...수술실에서 주먹으로 머리를 맞은 건 여러 번이고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4년 차 전공의인 최진희(가명) 씨의 이야기다. 최 씨의 동기 전공의인 김민정(가명) 씨도 비슷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저도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머리를 많이 맞았어요. 여러 번 있었고 저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어요. 피가 날 정도로 때리시는 건 아니니까..."

핸드폰으로 내리치고 주먹으로 때리고

두 전공의의 증언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A 모 교수다. A 교수는 과거에도 전공의 폭행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적이 있다. 2015년 6월 A 교수가 전공의를 폭행한 사건이 교내에 알려지면서 교수회의까지 열렸었다. 취재진이 입수한 당시 교수회의 회의록엔 폭행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폭행을 당한 전공의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A 교수님 수술은 처음 들어가는 상황이어서 assist(보조)가 미흡하였고 수술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수술 기구들로 손을 연속적으로 수차례씩 맞았습니다. 그 와중에 수술 후반부엔 통증이 심하여 맞는 도중 손을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되었는데 '너는 멍들어도 싸다'라는 말을 하며 때리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피해 전공의는 다른 수술 과정에서도 몇 차례 폭행을 당했고 결국 산부인과 수련을 포기했다. 교수회의는 A 교수가 피해 전공의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주임교수는 전공의들에게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이메일을 발송하기로 했다.

지난 2015년 6월 A 교수의 폭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세브란스병원은 교수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피해 전공의에게 A 교수가 직접 사과할 것을 결정했다.
교수회의 결정에도 '사과 거부'…주임 교수가 대신 사과

그러나 A 교수는 교수회의 결정에 반발해 사과를 거부했다. 피해 전공의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상벌위원회가 열리면 그 결과에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A 교수의 이 같은 완강한 입장에 피해 전공의는 차마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고, 결국 가해 당사자인 A 교수가 아니라 주임교수가 전공의들에게 대신 사과하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A 교수는 징계는 고사하고 아무런 제재 조치도 받지 않았다.

그 뒤로 4년이 흘렀지만, A 교수의 갑질은 계속됐다. KBS 취재진을 만나 폭행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전공의들은 A 교수의 폭언에도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제대로 못 하는 이유가 지방대 출신이라 그런 거 아니냐, 머릿속에 뭐가 들었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시거든요. 유난히 자존심 상하게 하는 그런 말을 많이 하세요." 분만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학 용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인격 모독성 발언을 들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전화 할 때는 바보 ○○○이라고 해라', '저는 바보 ○○○입니다라고 말해라'라고 하셨던 적도 있어요."

세브란스 병원 산부인과 4년차 전공의 12명 전원은 지난달 20일 A 교수의 폭행·폭언 사례를 모아 탄원서를 작성해 학교에 제출했다.
계속되는 폭언·폭행에 진료 거부까지…전공의 전원 탄원서 제출

A 교수의 계속되는 갑질에 세브란스 병원 산부인과 4년차 전공의 12명 전원은 지난달 20일 A 교수의 폭행·폭언 사례를 모아 탄원서를 작성해 학교에 제출했다.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지난달 14일 오후 8시 반쯤 A 교수의 담당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왔다. 임신 19주차 산모로 유산 상태였다. 당직 전공의는 초음파 검사와 혈액 검사를 진행했다. 산모에겐 임신 종결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A교수에 당직 보고를 해야 할 시간은 밤 10시. 전공의가 검사 결과를 확인한 뒤 밤 10시 30분에 전화를 했지만, A 교수는 시간에 맞춰 보고하지 못했다며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30분 뒤 다시 전화를 했지만 A 교수는 받지 않았다.

A 교수의 지시를 받지 못한 전공의는 환자를 방치할 수 없어 임신 종결을 위한 처치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7시쯤 A 교수에게 전화해 처치에 대해 보고하자 "제정신이냐, 미쳤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면서 당직 전공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내렸다.

"엄청 화를 내시면서 자기는 그 산모를 볼 생각이 없으니 당직 전공의 앞으로 입원시키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사실 전공의 앞으로는 입원을 시킬 수도 없거든요. 본인 환자를 처치 없이 그냥 방치하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낮에도 A 교수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공의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교수에게 환자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낮에 회진 오셔서도 '나는 저 환자 안 볼 거다. 전공의 앞으로 데려가라. 화가 나서 환자를 볼 수 없다.'고 하셨어요. 저는 교수님이 단지 화가 나서 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화를 다시 드렸는데도 환자를 안 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어요."

A 교수 "때로는 교육을 위해 심한 질책 필요…정신 차리라는 뜻"

A 교수는 고위험 산모를 담당하는 산부인과 전문의다. 사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전공의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때로는 심한 질책이 필요하다는 게 A 교수의 해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교수는 심한 질책을 했는데 상대방이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폭언이라고 받아들였다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2015년 사건에 대해서도 "전공의가 수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며 "수술 도구로 등을 딱 한 대 때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제기된 폭행 주장에 대해서도 "수술실에서 졸거나 실수한 전공의들에게 정신 차리라는 뜻에서 한 행동"이라며 "폭행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전공의에 대한 교수들의 폭력은 의료계의 오랜 병폐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는 부산대병원 교수들의 전공의 폭행 사건이 폭로됐다. 비슷한 시기 한양대병원과 전북대병원에서도 전공의 폭행사건이 있었다. 의료계 특유의 폐쇄적 문화는 자정작용을 막기도 한다. 교수를 정점으로 한 도제식(徒弟式) 수련 환경에서 전공의는 폭행·폭언 피해를 당해도 밝히기 어렵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회 회장은 “폭행과 폭언을 교육 목적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교육을 위해 폭행해도 된다고 말한다면 교육자로서 자질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교육을 위한 것이라 해도 폭행과 폭언이 용납될 수는 없다"면서도 "좁은 의사 사회에서 낙인이 찍힐까 봐 말을 하지 못하고, 피해 사실을 알린 전공의들 중엔 사직서를 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연관기사] “선배가 상습 폭행·욕설”…전공의 폭행 진실은?

세브란스 병원, A 교수와 피해 전공의들 분리 조치

탄원서를 제출한 전공의들과 상담을 진행한 병원 교육수련부는 "탄원서 내용은 사실과 일치한다"며 "A교수의 폭언이 교육 목적의 훈육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 A 교수가 "환자와 보호자, 간호사들 앞에서도 모욕적인 언사와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세브란스병원은 A 교수와 4년 차 전공의들이 수련 과정에서 접촉하지 않도록 하는 분리 조치를 내렸다. 2015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지 4년이 지나서야 취해진 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