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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금 서울은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뉴타운 개발이라는 도시개발 사업이 한창 진행중입니다. 낙후된 지역을 재개발해 서울을 균형있게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인데, 개발이익을 얻게 되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를 반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뉴타운 개발지로 지정돼 곧 재개발에 들어갈 서울의 한 마을 주민들은 제발 마을을 없애지 말라며 서울시를 상대로 기나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 도심의 끝자락인 은평구 진관내동 440번지, 북한산 백운대를 배경으로 '한양주택' 마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지 50평에 건평 28평, 모두 똑같은 규모로 214가구의 단층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집들 대부분은 아담한 나무 울타리가 높은 담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마을주민 차문연 씨 집 마당에서는 이웃들이 모여 고추심기가 한창입니다. 마당에 무언가를 함께 심어, 서로 나눠먹는 일은 '한양주택' 주민들의 일상 가운데 하납니다. <인터뷰> 차문연(한양주택 6년 거주): (같이 따다가 드시기도 하세요?) “그렇죠. 서로 된장 끓이다가도 고추 없으면 쫓아와서 따가고 그래요.” (마당에 뭐 심어보셨어요?) “여기에 상추, 지금 씨앗이 안 나와서 그렇죠. 별난 것 다 심어 놨어요. 많이 심어놨어요. 상추도 심어놓고, 고추도 심어놓고, 꽃도 다 있고, 마당이 넓어서 참 좋아요.” 고추를 다 심은 후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식사 준비에 나서고, 이내 마당에서는 고기가 구워지기 시작합니다. <인터뷰> 안임준(한양주택 27년 거주): “아파트 가면 이런 재미없어요. 아파트 가면 어딜 가서 사람도 못 보지, 못 봐요. 여기는 동네 사람 다 수저 몇 개도 다 알아, 아파트는 옆집도 모르잖아.” 집 크기가 똑같다보니 다들 비슷한 처지라는 동질감이 주민들을 가깝게 이어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소양(한양주택 6년 거주): “사는 규모 비슷하지, 사는 내용도 비슷하지 누가 얼마큼 어떤지도 다 알고 그러니깐 위화감 같은 것도 전혀 없고, 남이 나와 다르다 사는 것이 다르다 해서 느끼는 그런 것 없어서 좋아요.” 이 마을에 20 년이 넘게 살아 온 나영자 씨 가족도 마을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이사 올 당시 7살이었던 아들은 어느새 어른이 됐고, 이 곳에서 결혼을 해 이제 두 딸을 둔 아버지가 됐습니다. <인터뷰> 이승훈(한양주택 27년 거주): “아파트만큼 도둑이 없어요. 저희 집이 제가 27년 살면서 청바지 2개 훔쳐 간 것 밖에 없어요. 지금까지” <인터뷰> 김래영(한양주택 6년 거주): “맛있는 것 하면 앞집에 갖다 드리고 앞집에서도 뭐 하시면 서로 나눠먹고 애들도 아시니깐 서로 예뻐해 주고 그러니깐 어른들한테 대하는 것도 많이 배우는 것 같더라고요. 인사하는 것도 그렇고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어른들 대한 예의도 바르고.” 주민들간의 돈독한 연대와 아름다운 풍경이 인정받으면서, 한양주택은 지난 1996년 '서울시 아름다운 마을'로 지정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양주택은 개발이냐, 존치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 2002년 서울시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던 구파발, 진관내동 일대를 '은평 뉴타운'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한양주택이 은평 뉴타운 3지구에 포함된다는 개발계획이 알려지자,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살기 좋은 우리 마을을 없애지 말아달라, 그냥 이 아름다운 마을에 살 게 해 달라며 들고 일어선 것입니다. <인터뷰> 이점희(한양주택 28년 거주): “주민들을 위한다면 살기 좋은 마을을 위한다면 우리 이 한양주택 얼마나 좋아요, 보시다시피 소방도로 딱딱 골목마다 다 돼 있고, 이 한양주택은 헐 필요가, 이유가 없는 동네잖아요. 자기네들이 지어놓고 자기네들이 또 이렇게 헐면 그게 뭐예요?” 한양주택이 조성된 것은 지난 1979년, 남북회담 때 북측 인사들의 주 통로였던 통일로 주변이 정비되면서, 일대 낡은 집들이 철거되고 건설된 이른바 '전시용 주택 단지' 입니다. 비록 정치적 이유로 건설된 마을로, 당시 주변 집 값의 세 배 가량인 천 여 만원을 주고, 이 곳에 강제 이주했던 주민들은 나무 한 그루 없던 마을을 친환경 생태마을로 가꿨습니다. 통일로 주변에 살다가 집이 철거되면서, 한양주택에 어쩔 수 없이 입주했던 마을 통장 임병철 씨는, 또 다시 강제수용 당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얘기합니다. 한번 개발된 마을을 왜 또 개발한다는 건지 임씨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 임병철(한양주택 28년 거주): “그 때는 보상도 없이 딱지 하나만 가지고 여기 들어왔다고 맨 몸으로...그런데 지금 여기서 27년 30년 가까이 살았는데 또 나가라고? 시방 나이 70이 됐는데 어디로 나가요.” 주민들은 지난해 7월부터 뉴타운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서울시청 앞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벌써 200 여일 쨉니다. 힘들었던 추운 겨울이 지났고, 이제 다시 무더운 여름이 올 테지만, 주민들은 1인 시위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배지웅(한양주택 주민): “맨 처음에는 되게 창피하고 어색하고 했는데요, 지금은 예전보다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저희 한양주택을 많이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더 저희 한양주택이 이러니깐 인터넷에 들어가서 서울시에 항의 좀 해 달라고, 이런 곳을 개발해야 하는가, 한번 좀 생각해 달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하지만 뉴타운 개발의지가 확고한 서울시는 은평 뉴타운 지구의 중심에 위치한 한양주택의 재개발은 불가피하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고 실시하는 공영개발이기 때문에, 도시개발법상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아도 강제수용 할 수 있어 법적으로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이건기(서울시 뉴타운사업 1반 과장): “주변이 개발되고 거기만 놔두면 이게 아파트 안에 단독주택이 있어서 우선 주거 생활도 별로 안 좋고, 경관 상에도 문제가 있다.” 물론 주민들이 낼 추가 부담금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아파트 입주권 등의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이건기(서울시 뉴타운사업 1반 과장): “한양주택의 경우는 토지면적이나 건물면적을 해서 그 기준에 넣어보면 42평 짜리 아파트 분양권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서울시가 꿈쩍도 하지 않자, 주민들은 지난 1월, 문화시민단체와 민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한양주택 단지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했습니다. 아예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 서울시가 마을을 없애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6일 문화재위원회는 한양주택이 건립된 지 50년이 채 안 됐으며, 역사적, 건축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등록 불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인터뷰> 김인규(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주민들이 보존에 의지가 있다고 하는 내용도 물론 논의가 안에서 내부적으로 되긴 했습니다만 문화재적으로 볼 때 한양주택 자체가 어떤 문화재로서의 가치 유무,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가치가 없다라는 그런 결론이 나온 거죠.” 이런 문화재청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문화재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습니다. <인터뷰> 황평우(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 “이 한양주택은 40년대, 50년대 70년대 80년대 우리나라 집단 주택 주거지의 그 과정에 있는 아주 상징적인 건물 집텁니다. 재심의 요청하고 근대문화재 위원분들한테 현장답사도 요청할 것입니다.” 전문가들도 건물 자체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한양주택 주민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공동체적 삶의 모습에 더 가치를 둬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안창모(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주민들이 오랫동안 가꿔왔던 삶의 네트웍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개발을 할 때 일시적으로 한꺼번에 짧은 시일 내에 가는 개발의 한계가 거기 있는 거죠. 전체적으로 물리적인 질의 향상은 될지 모르지만 삶의 네트웍이 깨진다라는 거죠.” 하지만 싸움이 길어지면서 사이 좋던 주민들간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존치를 원한다는 플래카드와 한양주택의 감정평가를 축하한다는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섞여 나부끼고 있습니다. 개발계획 발표 직후인 2003년에는 90% 이상의 주민들이 개발을 반대했지만, 끝까지 버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나 둘 포기하기 시작해, 지금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주민은 전체의 절반이 채 안 되는 90여 가구 정돕니다. <인터뷰> 이재심(대책위 부위원장): “말들만 무성한 거야, 1지구가 수용되고 이러면서 나중에 버티면 늦게까지 버티는 사람은 불이익을 받는다....그래도 84가구가 남았으니깐 대단하신 거죠.” <인터뷰> 나윤석(개발 찬성 주민): “불협화음 많았죠.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깊은 곳에 들어가 보면 어차피 자기 살고 있는 곳에 애착심이 없는 곳이 어디 있겠어요?” 지난달 27일, 한양주택에서는 보상가격을 책정하기 위한 평가사들의 감정평가가 이뤄졌습니다. 개발에 찬성하며 감정평가를 받는 주민들과 받지 않는 주민들간의 긴장감으로 마을 분위기는 어수선합니다. <인터뷰> 한양주택담당 감정평가사: (오늘 하시는 작업들이 다 마무리되면 적정 보상가가 정해지는 거죠?) “그렇죠. 오늘 저희 평가사들이 와서 평가를 함으로써 손실 보상액이 책정되는 것입니다.” 행여 보상가가 낮게 책정되지는 않을까 감정평가를 받는 주민들은 노심초삽니다. <인터뷰> 최문섭(개발찬성 주민): “실사가 잘 돼 야죠. 잘 돼 가지고 고평가를 받아야 우리 주민은 좋지 그래야 딴 데 나가서 진짜 이왕 삶의 질이 높아지기 위해서 하는 건데 딴 데 나가더라도 전세방을 얻더라도 좋은 거 얻어서 나가잖아.”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올 연말쯤 한양주택 마을은 그 자취가 사라집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오는 2008년쯤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섭니다. 하지만 한양주택 사람들은 조그만 마당과 정다운 이웃들이 있는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지 않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