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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얼마 전,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장이 전 영부인을 사칭한 여성에게 거액을 송금하고 자녀의 취업에까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는데요.

어떻게 그런 터무니없는 말에 속을까 싶지만,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권력형 사칭 사기의 수법과 반복되는 이유를 방준원, 강푸른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어릴 적 친구라고 소개한 70대 여성, 전직 대학교수 윤 모 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습니다.

[윤OO/사칭 사기 피해자/음성변조 : "제의를 받고 서울에 가서 만났거든요. 너무 마음에 들어 한다면서 (청와대) 수석 비서관으로 발령이 날 거다..."]

식성까지 거론하며 친분을 과시했습니다.

[대통령 측근 사칭 사기범/2015년 2월 : "(대통령) 생일이라고 오라고 하는데 안 갈 수가 없잖아. 우거지, 돼지 삶은 물에다 우거지 넣은 걸 그렇게 좋아해요."]

이후 대통령 한복값, 청와대 회식비 등을 내야 한다며 뜯어간 돈이 1억 9천만 원.

의심도 들었지만, 상대방 큰소리에 오히려 움츠러들었습니다.

[윤OO/사칭 사기 피해자/음성변조 : "(확인한다는 건) 상대를 못 믿기 때문에 하는 얘기 아니예요. 그걸 보여 달라고 하면 '나 못 믿느냐' 하니까."]

금괴 사진과 층층이 쌓인 현금 영상, 사기범이 대통령 비자금이라고 사업가 안 모 씨에게 보낸 겁니다.

관리 비용을 대주면 5천억 원을 준다는 말에 깜빡 속았습니다.

[안OO/사칭 사기 피해자/음성변조 : "이게 비자금인데 이걸 수면 위로 끌고 와서 작업을 해주면 공로가 돼서 분배해 주고."]

사칭 사기를 조심하라는 청와대 기자회견에 놀라 신고했지만, 이미 5억 5천만 원을 잃은 뒤였습니다.

[안OO/사칭 사기 피해자/음성변조 : "경찰청에서 '안가'가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네 안방을 '안가'라 그랬다는 거예요."]

사기범들은 대담한 거짓말로 '설마' 하는 심리를 노렸습니다.

[지자체장 A 씨/권양숙 여사 사칭범 접촉/음성변조 : "뭐 지역 전 국회의원, 시장 들먹거리면서 누구는 뭐고, 누구는 뭐고 이렇게."]

속았다는 수치심에 차마 신고하지 못하는 점도 먹잇감입니다.

[윤OO/사칭 사기 피해자/음성변조 : "부끄럽고 창피스러운 일이고 어떻게 보면 당하고도 쉬쉬할 수밖에 없는. 그러다 보니까 세월이 많이 흘렀고."]

권력에 기대 한 몫 챙겨보려는 욕심이 화근이었다고 피해자들은 털어놓습니다.

[안OO/사칭 사기 피해자/음성변조 : "제가 이렇게 피해를 본 것도 하나의 욕심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한 사람으로서 족하고, 저 같은 피해자들이 안 생겼으면 해서."]

KBS 뉴스 방준원입니다.

▼집권 2년차에 기승…사칭 사기의 심리학

최고 권력층 사칭 사기는 이승만 대통령 때도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양아들 행세를 하며 경찰서장까지 속였던 '가짜 이강석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사기는 각 정권의 특성을 잘 이용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는 '새마을 운동' 사업을 내세우는 사기가 유행이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엔 '금융 실명제'로 묶인 검은 돈이 단골 메뉴.

[KBS 뉴스9/1993년 11월 : "이들은 청와대 땅을 사면 금융실명제로 묶여 있는 뭉칫돈도 자금 추적을 면제해 주겠다며 돈줄을 끌어 모았습니다."]

첫 정권교체가 된 이후에는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이 사기의 키워드 였습니다.

[KBS 뉴스9/2000년 3월 : "큰 손 장영자 씨가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며 접근한 사람에게 속아서 수십 억 원의 사기를 당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자 4대강 등 대규모 공사의 수주권이 자주 미끼가 됐습니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언론에 보도된 권력층 사칭 사기 139건을 분석했습니다.

집권 초반, 1~2년 차에 사기가 몰리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이수정/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 "권력이라는 게 결국은 강력할 때 여야 사람들에게 어떤 나름의 설득력이 있는 것이지 권력 말기에 그 사칭을 해봤자 그게 무슨 효력이 있겠어요?"]

누구를 사칭하는 경우가 많았을까.

전체 139건 중 청와대 직원이 40건, 가장 많았습니다.

'비선 특보' '특별 보좌관' 같은 그럴듯한 직함을 만들어냈습니다.

국정원 비밀 요원 등 정보기관 직원을 사칭하는 유형이 29건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배상훈/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 : "통신이 차단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게 권력형 사기의 특징이죠. 국민의 알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된다고 하면 사실은 이런 사기는 많이 줄어들겠죠."]

권력에 기대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인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비슷한 사칭 사기는 계속될 거라는 점을 지난 사례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강푸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