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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의 삶 꿈꾸는 이준형 씨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학교 후문 앞에 위치한 허름한 토스트 가게. 방학과 한파로 한동안 닫혀있었던 가게 문이 열리자 삼삼오오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오랜만이네요. 공부는 잘돼요?”, “앞으로 뭐 하고 싶어요?”, “고향이 영주라고 했죠?”

가게를 운영하는 이준형(28) 씨는 토스트를 구우며 무심한 듯 친숙한 말투로 손님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돈이 모자라서 다음에 오겠다는 학생들에겐 “재료 남겨서 뭐하겠느냐”며 토스트를 공짜로 주기도 했다. 토스트 맛은 훌륭했다. 2,000~2,500원짜리 치고는 양도 많아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었다. 토스트 굽는 연기엔 사람 냄새가 섞여 있었다.



간판 ‘광.인.수.집’(광운대 인문대 수석 졸업자의 집)

간판부터 범상치 않은 이곳은 나름 이 동네의 명소다. 이 씨는 2년 전 이 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가게를 차리기 전 이 씨도 직장을 다녔다. 재학 시절 인턴으로 입사한 취업컨설팅회사에서 2년 만에 정규직 팀장 자리에 올라 월 300여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잦은 출장과 늦은 퇴근이 반복되면서 인생을 소모적으로 살고 있다고 느꼈고 사람과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그는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반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가족들도 그의 뜻을 존중해줬다.



특별한 기술과 큰 자본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업종으로 토스트 장사를 택한 이 씨는 재학시절 몸담고 있던 기독교 동아리 선배의 조언으로 지난해 3월 학교 앞에 둥지를 틀었다. 인문학도로서 학교 후배들에게 ‘좋은 형’이 돼주고픈 마음에서였다.

처음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엇갈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인문대 졸업생의 최후를 보는 것 같아 슬프다”, “학교 망신시킨다”, “사람들 이목 끌려고 별짓을 다 한다”는 등의 부정적 의견도 많았다. 일부 동네 어르신들의 따가운 눈총도 견뎌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용기 있는 시도”라며 이 씨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6㎡(2평) 남짓한 가게엔 손님들이 남긴 응원메시지가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고 단골도 많아졌다. 5~6시간씩 고민 상담이나 잡담을 하고 가는 후배들도 생겼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응원 메시지들



광인수집의 ‘스토리’가 입소문을 타면서 장사도 제법 잘 됐다. 한창땐 하루 20~30만 원씩 벌었다. 주 5일 장사를 고집하면서 ‘공무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여러 단체에서 의뢰가 들어와 수차례 강연도 했다. 몇몇 언론에 소개되면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손님들까지 생겼다. 그럴수록 직업에 대한 그의 철학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렇게 ‘남다른’ 1년을 보낸 이 씨는 이제 새로운 도전의 길목에 섰다. 최근 가게를 정리한 것이다.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도 왔지만 거절했다. 토스트 장사를 더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어 고심 끝에 결정했다고 한다.

이 씨의 목표는 지금까지 쌓은 경험을 토대로 좀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면서 사는 길을 찾는 것이다. 구체적인 그림이 아직 그려지진 않았지만,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당분간 책도 쓰고 마음껏 고민해볼 작정이다.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말하는 그의 미소가 유쾌한 에너지를 전했다.



☞ ① “대학 수석졸업생은 토스트 구우면 안 되나요?”
☞ ② “가만히 있는 천재보다 움직이는 바보가 낫다”
☞ ③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닌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