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이 풀린다”…제주4·3 일반재판 수형인 첫 재심 결정_주방 샤워용 빙고 카드 템플릿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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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사건 일반재판 생존 수형인에 대한 재심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였다. 일반재판 수형인의 재심이 받아들여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4·3 진상 규명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빨갱이, 빨갱이…억울함을 참질 못하겠어요"

올해로 92살인 김두황 할아버지가 20살이었던 1948년 11월 16일. 제주가 4·3으로 어지러웠던 시기에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소재의 집으로 경찰 2명이 들이닥쳤다. 고문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남로당에 가입한 사실을 털어놓으라며 각목으로 무차별적인 구타와 폭행이 이뤄졌다. 경찰이 총을 겨눠 죽이겠다고 협박도 했다.

구금된 지 15일 만인 1948년 11월 30일쯤, 김 할아버지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재판에서 김 할아버지는 변호사를 선임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한 마디 진술도 못했다. 판사의 선고만 있었다. 죄명은 '내란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는 김 할아버지가 1948년 9월 25일 오후 8시 45분 주민 6명과 무허가 집회를 열고, 폭도에게 식량 제공을 결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폭도를 지원하며 국가를 위협했다는 거다.

그리고 70여 년이 흐른 지금, 김 할아버지는 당시를 떠올리며 "전혀 한 일도 없는데 오죽 억울하겠습니까, 억울함을 참질 못하겠어요"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지금도 할아버지를 괴롭히는 건 '빨갱이'라는 낙인이다. 날조된 재판인데도 재판 기록상 할아버지는 여전히 죄인이다. 김 할아버지는 "나 빨갱이, 폭도 그대로 남아 있어요. 너무 억울해요"라고 호소했다.

평생을 한으로 살아온 김 할아버지는 지난해 10월 22일, 자신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김두황 할아버지가 법원에 제출한 일반재판 재심청구 서류
■4·3 수형인 명예회복…최초의 일반재판 수형인 재심 청구

제주 4·3 때 김 할아버지처럼 나름의 정식 재판을 받아 수감생활을 한 사람들을 '일반재판 수형인'이라 한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파악된 일반재판 수형인은 1,310명이다. 군사재판을 받고 수감생활을 한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을 '군사재판 수형인'이라고 부른다. 일반재판 수형인보다 2배 가까이 많은 2,530명에 달한다.

일반재판과 군사재판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판결문'이다. 군사재판 수형인의 경우 판결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감생활을 했다는 '수감인 명부'만 남아있다. 반면 일반재판 수형인은 그것이 비록 날조라 하더라도 판결문이 있다.

문제는 판결문 유무에 따라 재심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2018년 12월 17일 제주지방법원은 군사재판 수형인 18명에 대한 재심을 열고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형사소송법상 공소사실을 특정할 수 없으므로 공소제기 절차가 무효라고 판시했다. 재판 자체가 판결문도 없는 엉터리였기 때문에 무효라는 얘기인데, 사실상 무죄 판결이다.

판결문이 남아 있는 일반재판 수형인은 군사재판 수형인보다 공소기각 판결을 받기가 어렵다. 이 경우 재심을 열어 유무죄를 다시 따져야 하는데, 재심을 개시하려면 '재심사유'가 있어야 한다. 영장 없이 불법 연행됐고, 구금된 뒤에는 고문을 당했다는 김 할아버지의 진술(재심사유)을 법원이 받아들여야만 재심이 열릴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원이 김 할아버지의 진술을 인정해줄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김 할아버지가 재심을 청구했던 지난해, 변호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제주4·3과 관련한 일반재판 수형자의 재심은 김 할아버지가 처음인데, 선례가 없어 법원의 판단을 예상할 수 없다"며 "고문과 불법 구금이 진술로서 확인되는데, 이런 것들을 (70년이 지난)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재판부한테 현출을 시키고(드러내고), 명예회복을 할지는, 또 도전일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재심청구 당시, 제주 4·3사건 생존수형인과 가족들이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명예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제주4·3 첫 일반재판 재심 개시…"허위 진술할 이유 없다"

재심 청구로부터 꼬박 1년이 지난 오늘(8일), 제주지방법원은 김 할아버지의 재심을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고문을 통해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김 할아버지의 진술을 법원이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 당시에 법이 정한 최대 구금일은 40일로, 영장이 발부됐다 해도 40일 넘으면 풀어줘야 한다"며 "하지만 김 할아버지 구금일이 40일을 초과해 계산상 불법 구금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김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었고 현재 나이 92살이다. 그런 분이 이 법정에서 허위로 진술할만한 이유가 없다"며 재심 개시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재심은 피고인의 인권보호를 위한 최후의 법적 보호 수단"이라며" "70년이 넘은 가혹한 일에 대해서 재심 사유만으로 재심 개재 여부를 엄격하게 따져버리면, 자칫하면 재심 제도가 가진 원래 존재 의의가 반할 수 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임재성 변호사는 이번 재심 개시 결정을 4·3 진상 규명의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평가했다.

임 변호사는 "그동안 군사재판에 대해서는 여러 조사나 불법성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일반재판은 그렇지 못했다"며 "이번 재심 개시 결정으로 4·3을 보다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고, 일반재판 수형인에 대해서도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임 변호사는 "이제부턴 공소장을 다시 내고, 증거를 제출하는 등 유죄 증명 책임이 검찰 측으로 넘어간다"며 "앞으로 정식 재심 절차에서 우리는 검찰의 입증에 대해 반박하는 형식이겠지만, 실제로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무죄가 선고될 것이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심 개시 결정 듣고 법정을 빠져나온 김 할아버지는 "70년 넘게 가슴에 파묻혀 있던 한이 풀리는 것 같아, 오늘 기분이 참 좋네"라며 모처럼 웃었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군사재판 수형인 7명에 대한 2차 재심청구도 받아들였다.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 정의할 수 있다.…잠정적으로 4·3사건 인명피해를 25,000~30,000명으로 추정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