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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건너고 휴전선을 넘어야 만날 수 있는 그리운 가족을 가슴에 품은 채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움직일 수 있을 때, 만나고픈 가족들이 살아있을 때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지난 달 24일 워싱턴 D.C.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로버트 킹 대북 인권특사를 만나고 시카고로 돌아온 재미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 공동의장 겸 사무총장 이차희(70)씨는 1일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킹 특사와의 면담은 지난해 12월 한인이산가족상봉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돼 공식 발효된 뒤 킹 특사 측에서 먼저 요청해 이뤄졌으며 이산가족상봉추진위 측에서 이씨를 비롯해 15명이 참여했다. 그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면서 "수용적인 자세로 추진위 대표들의 이야기를 고루 들은 킹 특사는 깊은 공감을 나타내면서 이제 시작단계라 구체적인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정책이 마련되는대로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면담결과를 전했다. 재미 이산가족들의 북한가족 상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이씨 역시 이산가족이다. 그는 "부모님이 한국전쟁과 함께 남북으로 갈려 서로 소식 한번 나누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면서 "북한에 오빠 한 분이 계시는데 92년께 소식을 한번 전해들었을 뿐 이후로는 생사도 모른다"며 회한을 나타냈다. 68년에 미국으로 유학 온 그는 1976년부터 시카고시 공무원으로 일을 시작, 시카고 공립 알바니팍 도서관장으로 20년간 재직하다 2008년 6월 은퇴했다. 이씨는 재미한인 이산가족문제를 마크 커크 연방하원의원에게 처음 알려 그가 이 문제를 미 의회에 최초로 발의하고 법제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2000년 연방하원에 도전하는 커크 의원을 처음 만났는데 한국전쟁에 참전한 아버지와 한인 입양아 여동생이 있어서인지 한인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 커크 의원은 2001년 미 의회에서 이산가족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고, 커크의원과 파트너가 된 이씨는 미국 각지의 한인단체들을 서로 연결하고 의회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벌이며 이산가족 상봉의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그 결과 2007년에는 커크 의원과 짐 매디슨 의원(유타주, 민주당)을 공동의장으로 하는 미 연방하원 11인의 '이산가족문제 위원회'가 의회에 결성되기도 했다. 이씨는 "한국과 북한의 이산가족 합의서에 '미국 시민권자는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있어 재미 이산가족들은 남북이산가족 상봉 협상대상에서 아예 제외돼왔다"면서 이런 점 때문에 1980년대와 90년대에 재미 이산가족들은 가족상봉을 암시장 브로커들에게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1인당 2만 달러에서 4만 달러를 내면 북한 방문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돈만 떼이고 못간 경우도 있었고 가서도 가족을 못 만나고 돌아온 경우도 있었지만 헤어진 부모, 두고 온 자식을 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브로커를 찾는 이들이 줄을 섰습니다." 그러나 이산가족 1세대가 대부분 세상을 떠나자 절박감도 줄어 암시장은 수그러들었다. 이씨는 "이산가족이 된 지 60년, 미 의회에 이산가족의 존재가 알려지고 난 후 10년이 지났다"면서 "법제화 이후 처음으로 미 행정부 책임 관료를 만났으니 이번엔 기대를 해본다"고 말했다. 앞으로 미 국무부가 정책 결정을 하고 나면, 미국 적십자사가 북한 적십자사와의 접촉을 시작하고, 미국 각 주의 한인단체를 중심으로 지원서를 받아 지금까지 남북한이 해왔듯이 미국과 북한이 이산가족 명단을 가지고 협상을 추진해 갈 것으로 이씨는 기대했다. "공무원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정책결정이라는 것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조급해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과정에 꼭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