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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조선시대 8대문 가운데 남대문과 동대문만이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서 한 일본인 학자가 새로운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이 대문들은 왜군장수들이 한양을 함락시키고 입성한 문이라서 남아 있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성범 기자입니다. ⊙기자: 국보 1호 남대문은 조선태조 5년, 1396년도에 세워졌으니까 600살이 넘었습니다. 조선시대 한양을 드나들던 8개 문 가운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남대문과 동대문, 곧 숭례문과 흥인문뿐입니다. 두 군데만 남게 된 연유에 대해 한 일본인 소장학자가 일제시대 자료를 근거로 새로운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해서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든 일본이 교통장애를 이유로 남대문을 부수려다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입성했던 문이라는 설명을 듣고 한발 물러서서 보존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동대문 역시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가 입성해 한양을 함락시킨 유래 때문에 놔뒀지만 일본과 관계없는 서대문 등은 도시 계획을 이유로 1915년에 부서버렸다는 설명입니다. 평양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임진왜란과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의 승리와 관련이 있는 성문과 누각은 보존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문화재적 가치보다 조선지배의 정당화에 이용할 수 있는 것만 적극적으로 보존했다는 한 일본인 소장학자의 분석은 국보 1호 남대문, 보물 1호 동대문이 안고 있는 개운치 않은 역사의 한 단면입니다. KBS뉴스 신성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