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출신 종합병원 부원장 첫 탄생 _포커 임신 계산기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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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출신 여성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종합병원 부원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주인공은 지난 1일 임기 2년의 연세의료원 2인자에 오른 이상미(54ㆍ여) 부원장으로 의사가 아닌 간호사 출신이 종합병원 부원장에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서 연세의료원은 2003년 말 부원장직을 신설하면서 미국에서 30여년 간 간호사 생활을 했던 김현옥(60ㆍ여ㆍ미국)씨를 2년 계약으로 스카우트하기도 했으나 순수 국내파로서는 이 부원장이 처음인 셈. 이 부원장은 경력 30년이 넘는 베테랑 간호사로 1974년 연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74년 3월 당시 간호대 졸업생은 대부분 미국 병원으로 떠났지만 이 부원장은 한국에 남기로 결심하고 연세의료원에 들어갔습니다. 수습을 떼고 일반 수술실에서 몇개월 근무했던 이 부원장은 그해 가을 심장수술실로 발령받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심장수술은 초창기로 의학기술과 장비가 낙후해 한번 수술을 하면 10∼20시간씩 이어지곤 해 아침 7시부터 시작한 수술은 밤 12시가 다 돼서야 끝나기 일쑤였고 때론 밤을 꼬박 새기도 했습니다. 고된 업무의 연속으로 몇 번이나 유산의 아픔을 겪었던 이 부원장은 1979년 첫 딸을 낳았습니다. 이 부원장은 “배가 불러와 거동도 불편했지만 심장수술의 특수성 때문에 근무를 바꿀 수가 없었다”며 “첫 애를 낳던 날도 아침까지 수술실에서 일하다 오후가 돼서야 분만실로 들어가 애를 낳았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남들은 힘들어서 1∼2년도 버티기 어렵다는 심장수술실에서 장장 8년을 근무한 이 부원장은 1981년말 서울 오류진료소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당시 오류동은 결핵환자 등 빈민이 많이 살던 곳이었기 때문에 무료진료나 가정방문은 다반사였습니다. 이어 변변한 대학병원 하나없던 인천으로 옮겨 인천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무의촌에 가까웠던 인천에서 이 부원장은 매일 환자들을 보살피고 중환자는 신촌 병원으로 후송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힘든 병원 근무 속에서도 어렵고 힘든 일만 도맡아오던 이 부원장은 11년간 미지를 ‘개척’한 뒤 1993년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더라구요. 내가 입사할때만 해도 의료진의 자세가 고압적이었죠. 환자들이 하얀 옷에서 느낀 것은 ‘천사’가 아니라 냉랭함과 냉철함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먼저 환자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거죠” 이 부원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잡니다. 그는 “내가 살아있는게 중요하면 남도 중요하죠. 내가 아프면 남도 아파요. 남을 내 몸같이 귀하게 여길줄 알아야 해요”라며 “간호사야말로 병원의 중추 역할을 합니다. 24시간 환자와 호흡하는 게 간호사니까요”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부원장은 “전문성을 지닌 간호사로서의 직업의식을 가져야 하지만 간호사의 최대가치는 바로 ‘사랑’입니다. 생명에 대한 겸허한 자세가 필요합니다”라고 후배 들에게 조언합니다. 신참 간호사에서 시작해 국내 굴지의 종합병원 임원까지 오른 이 부원장이기에 포부도 남다르다. 병원에서 도입한 환자진료 시스템인 ‘원스톱(one-stop) 시스템’이 여러 병원으로 확산되는 것이 이 부원장의 바람입니다. “이제는 원스톱 진료시스템이 대세입니다. 예전엔 의사 방에 환자가 찾아가야 했지만 이제는 환자에 필요한 진료를 한군데 모아서 한꺼번에 처리하는 ‘환자 중심의 진료’로 바뀌어야 합니다” 각계각층에서 여성지도자들이 점차 등장하고 있는 이 시대에 병원에서도 첫 ‘여성지도자’가 나왔다는 데 대해 이 부원장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을 아낍니다. 이 부원장은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답은 환자에게서 찾아야 합니다”라며 끝까지 환자를 잊지 않았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