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휠체어를 타는 KBS 앵커 입니다”_동전을 벌기 위한 게임_krvip

“저는 휠체어를 타는 KBS 앵커 입니다”_엘리사 산시스가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_krvip

▲ 12시 뉴스 ‘생활 뉴스’ 코너 담당 이석현 앵커

▲“생활뉴스입니다”, 2년의 세월을 돌아보다.

2011년 11월 7일. 시각장애를 가진 이창훈 앵커의 첫 생활뉴스가 전파를 탔습니다. 이후 8년 동안 4명의 장애인이 ≪KBS 뉴스 12≫에서 생활 정보가 담긴 <생활뉴스>를 진행했습니다. 저는 2017년 3월 7일부터 4번째 앵커로서 여러분들을 만나 뵈었는데 이제 5번째 앵커인 임현우 씨에게 자리를 넘기게 됩니다. 장애인 앵커들은 보이지 않는 눈 대신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시청자에게 보여드렸고, 휠체어를 타면서도 곳곳에 퍼져있는 유익한 정보를 알뜰히 모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렸습니다. 부족했지만 시청자 여러분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지난 2년을 돌아보고 새 앵커 임현우 씨를 소개하는 글로 작별을 대신할까 합니다.

 2년 동안 뉴스를 한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좀 더 밝게, 새로운 복장으로 시청자 여러분을 찾아뵙기도 했습니다.
▲우연과 땀이 기적을 만들다.

-저의 <생활뉴스> 앵커 도전은 우연히 시작됐습니다. 저는 2013년부터 KBS 3라디오에서 방송되는 ≪내일은 푸른 하늘≫의 코너 <패기 토크>의 고정 토론자로 출연하고 있었고, 다른 코너 <3인 3색 DJ 쇼>의 진행자도 맡고 있었습니다. <생활뉴스> 앵커 공고 당시 라디오 작가님의 추천으로 4대 앵커 선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석현의 생활뉴스>의 시작은 우연한 한마디 말로 시작됐습니다.
앵커 지원 준비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방송계열 지망생이 다닌다는 아카데미조차 다녀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장 뉴스를 위해 제가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나마 방송기자로 활동하는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 원고 읽기, 프롬프터 보기 등 기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장애에 대한 걱정도 많았습니다. 저는 뇌병변장애 때문에 다리와 팔 근육이 불편했고, 이것이 원활한 업무 수행을 방해하진 않을까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러나 걱정만 하고 있을 순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습에 필요한 장비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는 다양한 방법들을 생각했습니다. 뉴스 원고를 앵커에게 보여주는 장치인 ‘프롬프터’를 대신해 TV 화면에 노트북을 연결해 앵커멘트를 띄웠습니다. 카메라도 없었기 때문에 TV 위에 스마트폰을 설치해 놓고, 동영상을 촬영해 방송을 진행하는 제 모습을 담았습니다. 자기 전엔 과거의 KBS 뉴스 원고를 차곡차곡 쌓아 두고 꾸준히 읽었습니다. 이런 제 노력이 결실을 본 걸까요? 저는 최종 면접을 통과해 4대 생활 뉴스 앵커로서 뉴스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꿈만 같은 일이었습니다.

뉴스를 준비하는 일은 설레면서도 조심스럽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을 뵙기 직전까지 항상 꼼꼼히 준비합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법

-앵커가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신입 앵커의 생활은 하루하루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새로운 선발된 앵커는 아나운서들로부터 2~3주의 교육과정을 거칩니다. 앵커 선발 준비가 돌을 깎아 대강의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라면, 앵커 교육은 날을 벼려 예리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하루 200장에 이르는 원고를 매일 꾸준히 읽었고, 잠들기 전엔 복식호흡 연습을 했습니다. 발음 연습 외에도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로서 준비할 것이 많았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에게 더 정확한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저는 매일 앵커멘트를 쓰고 기사를 정리하고 요약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름 철저한 대비를 했음에도 실수는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첫 방송에선 긴장감 때문에 뻣뻣하게 굳은 채로 뉴스를 진행했습니다. 제가 눈도 날카로운 편이라 <생활뉴스>가 아닌 <추적 60분>을 진행하는 것 같다는 지인들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500만 원’이라고 읽어야 하는 기사를 ‘500’ 원으로 읽어 스튜디오를 긴장하게 한 적도 있었고, 뉴스가 끝나고 메마른 입술을 적시려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두어 달 정도가 지나자 조금씩 여유가 생겼습니다. 저는 뉴스를 시청자 여러분께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해볼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그제야 커다랗고 깊은 카메라 렌즈가 비로소 시청자 여러분의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생필품부터 건강 관련 소식까지 생활 전반의 뉴스를 전합니다.
▲폭넓은 기회로 넓어진 시선

-<생활 뉴스>코너 앵커는 KBS 내외부로부터 많은 기회를 얻게 됩니다. 라디오나 사보 등 내부 매체에 협의로 출연할 수 있고, 외적으로는 공익 목적으로 활동하는 행사에 한해 진행자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죠. 장애인으로서 무대에 당당히 올라 행사를 진행하는 일은 단순히 개인적인 업무가 아닌, 불편한 상황임에도 여러 방면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장애인의 가능성을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앵커이자 진행자로서 저는 인권행사부터 시작해 재외 교포들에게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일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했습니다. 여러 행사에서 겪은 다채로운 경험과 그 속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눈을 키우고 제 지식의 저변을 넓혀주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저는 앵커 경험으로 얻은 교훈들이 앞으로의 제 삶을 지탱해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제5대 ‘생활뉴스’ 코너 앵커 임현우 씨
▲새로운 앵커 임현우 씨

-2019년 3월 11일부터는 5대 앵커로 임현우 씨가 <생활 뉴스> 코너를 진행하게 됩니다. 비장애인이었던 임현우 씨는 공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다 교통사고로 척수장애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애를 더 폭넓은 기회를 열어줄 열쇠로 여겼다고 합니다. 휠체어 테니스에 도전해 선수로 활동했으며, 군 시절부터 칭찬받은 목소리를 살려 장애인 프리랜서 성우로도 활약했습니다. 계속해서 활동 저변을 넓혀가던 그는 2011년 첫 장애인 앵커 선발에도 지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앵커 도전은 유달리 더 어려웠다고 합니다. 2011년부터 2017년 장애인 앵커 선발까지, 8년 동안 네 번 모두 탈락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그간 해 온 꾸준한 노력이 그에게 큰 기회를 선사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도전한 2019년 제5대 <생활뉴스> 앵커 선발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종 합격한 겁니다. 임현우 씨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정으로 도전한다면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며 그간의 도전을 회상했습니다.
오랜 기간 준비 끝에 앵커가 된 만큼 기쁨도 크지만, 임현우 씨는 그만큼 걱정되는 것도 많다고 합니다. 그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에 대한 고민이 많고, 실수에 대한 두려움도 아직까진 크다”고 제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고민이 있음에도, 현우 씨는 자신이 서게 될 생활뉴스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있어 놀랐습니다. 그는 “<생활 뉴스>는 우리 삶에 밀접한 소식들로 구성되는 만큼 친근하고 편안하게 정보전달을 할 것”이라며, “시청자들이 가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한편 뉴스에 신뢰성을 높이겠다”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5대 앵커 임현우 씨에게 앞으로의 일을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생활뉴스 앵커를 떠나며

지난 2년간 활동한 ‘생활뉴스 앵커 이석현’의 시간은 기적처럼 놀랍고 소중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이는 새롭게 뉴스를 맡게 될 임현우 씨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로 생각합니다. 저는 장애 방송인을 대표하는 KBS 앵커로서 앞으로 임현우 앵커가 겪게 될 시간을 응원합니다. 또한,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생활뉴스를 시청하고 휠체어를 타는 앵커를 응원해 줄 시청자 여러분께 이 기회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