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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쌍꺼풀에 까무잡잡한 피부. 한 외국인 아기가 한복을 차려입고 앉았다. 아기 앞에 놓인 케이크엔 초 한 개가 꽂혀 있다. 지난 3일 서울 구로동 이주여성센터에서 열린 돌잔치다. 잔칫상의 주인공 이름은 '해피'다.

이제 막 한 살이 된 해피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해피의 부모는 둘 다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였다. 엄마와 아빠는 한 공장에서 일하며 동거했고, 해피를 임신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아빠는 바로 본국으로 떠났다. 엄마는 한국에 혼자 남았다. 불법체류자인 엄마는 해피를 낳을 수도, 키울 수도 없었다. 이주여성센터의 도움으로 무사히 출산했지만 엄마는 3일 만에 해피를 버려두고 도망쳤다.

이주여성센터 김은숙 원장은 아이에게 '해피'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아기가 하도 불행하니까 앞으로는 행복하게 살라고 '해피'라고 하자, 이렇게 해서 해피가 된 거예요." 김 원장은 "태어나고 보름 동안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는데 아이가 인큐베이터를 나왔을 땐 이미 젖을 줄 엄마는 사라진 뒤였다"고 말했다.



미숙아로 태어난 해피에게 엄마가 남긴 건 '불법체류자 신분'뿐이었다. 우리나라는 국적법상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도 부모의 국적을 따르는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다. 해피의 국적도 베트남이 돼야 하지만 도망간 엄마의 국적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 국적이 없으니 베트남으로 돌려보내고 싶어도 여권 발급조차 불가능하다. 부모의 나라 베트남에서도, 태어난 나라 한국에서도 해피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무국적 고아'가 됐다.

해피가 자랄수록 우리 사회에서 겪게 될 시련은 더욱 분명해진다. 당장 해피를 받아주는 보육시설이 없다. 우리나라 보육시설들은 한국 국적자에게만 입소 기회를 준다. 초·중·고교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학교장 재량에 따라 입학을 허가해 주면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혜택은 거기까지다. 의료보험은 물론 대입 수능 응시 자격이 주어질지 미지수다. 무국적 고아에 대한 정부의 공식 통계는 없다.

해피가 있는 이주여성센터에는 만 6살까지 무국적 고아 10명이 있다. 대부분 이주노동자의 아이들로 부모 중 한 명은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탄자니아 등에서 왔다. 아기들은 한국인 봉사자들의 품에서 분유를 먹고, 조금 큰 아이들은 쌀밥에 김치를 먹으며 한글 공부를 한다.

이주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지구촌사랑나눔 김해성 대표는 "불법 체류자의 자녀들이거나 외국인들에게서 버려진 아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어느 곳에서도 아이들을 수용하지 않는다"며 "이주여성센터와 함께 이들을 돌보고 있지만 교육과 의료 문제 등 안타까운 상황이 많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 무국적 아동의 교육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도록 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다. 협약에 가입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법령과 제도는 아직까지도 마련되지 않았다. 외국인이나 무국적자에게까지 복지혜택을 확대하는 데 대한 반대여론에 부딪힌 것이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음에도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며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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