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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깃한 종이봉투를 든 이재용

위 사진의 모습, 많이 기억하실 겁니다.

삼성의 고운 왕세자 같았던 이재용 부회장, 2017년 초 구속영장 기각 뒤 구치소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입니다. 수행비서 없이 소지품이 든 허름한 종이봉투를 혼자 들고 걸어 나오는 모습. 청문회에서도 안 흔들리던 이 부회장의 긴장 풀린 미소. 구치소에서 대기하기 위해 '항문검사'를 받았다는 뒷이야기까지. 기억에 안 남을 수 없었지요.

이 모습이 두고두고 남으리라 예상했을 삼성은, 당시 구속영장실질심사 이후 구치소가 아닌 특검 사무실에서 대기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부회장이 구치소를 드나드는 모습을 카메라 앞에 보이기 싫은 게 기업 입장에선 당연하겠지요. 특검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특검 사무실에서 대기하겠다고 법원에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자 '특혜 논란'이 일었습니다. 다른 특검 피의자들은 모두 영장심사 뒤 구치소에서 대기했는데, 또 삼성만 특혜냐는 거였지요.

결국, 법원은 이 부회장에게 서울구치소 대기를 명령합니다. 영장심사 뒤 대기하는 장소는 법적으로 법원이 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법원 관계자는 영장 기각을 예상하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장 기각하면 법원에 모든 비난이 쏟아질 텐데...국민들에게 천하의 이재용이 구치소에 들어갔다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카타르시스라도 줘야 하지 않나'라는 내부 의견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카타르시스'는 남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우울이나 불안이 해소되는 일을 뜻합니다.


수의와 항문검사, 독방

피의자들이 구속 여부를 기다리기 위해 구치소에 가면, 구속된 수용자와 같은 절차를 거쳤습니다.

먼저 알몸에 가운만 걸친 채 신체검사를 받습니다. 혹시 들여와선 안 되는 물건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카메라가 달린 의자에 앉아 항문 검사도 받았습니다.

검사를 마치면 수의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리고 미결수들이 지내는 독방에서 영장 소식을 기다립니다.

이 때문에 이른바 '높으신 분'들이 영장심사를 받을 때마다 '항문검사' 같은 단어가 포털에 실시간 검색어로 오르곤 했던 겁니다.

인권위가 제동을 걸었습니다. 구속 영장이 기각돼 풀려날 수도 있는데, 수용자와 같은 절차를 거치는 것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겁니다.

법무부는 이에 지난해 7월부터 절차를 바꿨습니다. 내의를 입고 육안으로만 간단히 신체검사를 하고, 옷은 정해준 운동복을 입습니다. 그리고 일반 수감자들이 있는 독방이 아닌, 유치실에서 각자 기다리도록 했습니다.


"구속 전 구치소로 보내는 건 책임 회피"

법무부가 대책을 마련했지만, 영장심사를 받은 피의자들이 구속되기도 전에 구치소 경험을 해야 한다는 건 변함없습니다.

최근 검사 출신 석동현 변호사는 이 부분을 문제 삼았습니다.

"검찰청사에서 금속 탐지기로 몸수색을 하고 사복 차림으로 대기해도 되는데, 영장 대기자를 구치소에 보내는 것은 비인권적이고 후진적"이라는 겁니다.

석 변호사는 "검사 입장에서는 데리고 있다가 피의자가 자해를 하는 등 돌발사태의 책임을 지기 싫어서이기 때문이고, 구치소 입장에서도 책임 떠안기 싫으니 방에 가둬 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석 변호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문제를 제기한 것인 만큼 다른 의도가 있을 여지도 있지만, 인권 면에서 생각했을 땐 '틀렸다'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영장'실질'심사인 이유

애초에 구속영장'실질'심사는 1995년,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전에는 영장판사가 검찰이 넘긴 서류만으로 판단해, 피의자를 대부분 구속시켰습니다. 인권에 반하는 '형식적' 심사였지요.

이것을 피의자가 직접 법관 앞에 서서 '실질적'으로 심사받을 수 있도록 바꾸면서, 명칭도 '영장실질심사'가 된 겁니다.

이런 실질적인 심사를 거쳐 구속이 되고도, 재판에 가서는 무죄 판결을 받아 석방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물며 수사 중 구속조차 결정 나지 않은 '심사 대기' 상태라면 인권을 해칠 요소가 없는지 더 꼼꼼하게 살필 필요가 있겠지요.

수사 단계에서 이뤄지는 '구속'에 우리가 너무 열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를 위해 타인의 인권을 해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