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올해가 한국의 문민정부가 탄생한 92년이 되길” [특파원 리포트]_포커에서 스트리트 하우스는 어떤가요_krvip

“태국의 올해가 한국의 문민정부가 탄생한 92년이 되길” [특파원 리포트]_복불복_krvip


이번 태국 총선에서 태국 유권자들은 '왕실모독죄' 개정을 들고나온 하버드 출신 신예 정치인 '피타 림짜른랏(42)'에게 몰표를 던졌다. 그가 대표로 있는 전진당(MFP/ Move Forward Party)은 방콕의 33개 지역구 중 32곳에서 승리하며 모두 151석을 얻어 제1당으로 떠올랐다.

피타 총리후보는 탁신계 정당인 푸어타이당 등 7개 정당과 연정을 꾸려 집권을 계획하고 있다. '국민의 명령에 따라 자신이 총리가 되겠다'고 분명하게 선언했다. 현재 500명의 하원 의석 중 이미 310석 이상을 확보했다. 하지만 군부가 지명한 250명의 상원의원들 때문에 자칫 76석에 그친 군부 여권이 다시 권력을 가져갈 수도 있다. 총리 선출을 앞두고 수많은 이합집산 경우의 수가 난무하는 가운데, KBS는 지난 4일 '피타 림짜른랏' 태국 총리후보를 직접 만났다.

1. 연정 구성

그는 "유권자들이 태국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Move Foward)을 결코 원하지 않는 군부 세력보다, 태국의 미래를 선택했다"며, "이는 시민 사회가 정치권보다 훨씬 앞서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했다. 군부가 지명한 상원의원 250명이 몰표를 던져 다시 군부가 주도하는 연정에서 총리가 배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총선에서 유권자의 65% 의 지지를 받은 8개 정당의 연정에서 총리를 배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세계에 매우 나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라며, "태국의 외환시장과 증시 등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피타 후보의 연정에 지지 의사를 밝힌 상원의원은 20여 명이다. 전체 의석(상원 250명과 하원 500명)의 과반 376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50여 명의 상원의원들이 자신들을 임명한 군부 대신, 피타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

피타 림짜른랏(42) 전진당 대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 석사, MIT 슬론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도 일했다. KBS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총리가 된다면 8년의 임기를 마치고 국제기구에서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로이터
2. 가족의 방송사 지분 소유 의혹

지난 2019년 총선에서도 전진당(MFP)의 전신 미래당(FFP Future Forward Party)이 역시 대도시 유권자와 청년들의 지지를 받으며 81석을 확보해 제3당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태국 헌법재판소는 타나톤 쯩룽르엉낏(43)대표가 미래당에 빌려준 선거자금을 문제 삼아 정당 해산명령을 내리고, 타나톤을 비롯한 당 수뇌부 17명에 대해 10년간 정치활동 금지를 명령했다.

태국 선관위는 이번에도 피타의 가족들이 소유한 방송사 지분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대해 피타 후보는 "해당 주식은 모두 신고됐으며, 17년 전에 문을 닫은 언론사의 지분을 통해 자신이 이번 선거에서 어떤 영향력도 행사 할 수 없다"며 무혐의를 확신했다. 선관위가 그의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해도 여전히 총리 후보는 유효하다. 하지만 이후 헌법재판소가 해당 지분을 문제 삼아 그의 총리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태국의 선관위와 헌법재판소는 군부가 임명한 인사들로 채워져있다.

지난 2020년 태국 헌법재판소가 개혁성향의 미래당(FFP)에 대한 해산명령을 내리자, 방콕에서는 수개월간 민주화 시위가 이어졌다. 당시 해산된 FFP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전진당(MFP)은 이번 총선에는 방콕 33개 지역구 중 32곳에서 승리하며 제1당이 됐다. 하지만 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다시 전진당(MFP)의 대표 ‘피타 림짜른랏’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사진 EPA 연합
3. 왕실모독죄

그의 공약은 파격적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동성결혼 합법화'등을 약속했다. 징병제 폐지도 공약했다.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막대한 국방 예산을 줄여 경제 관련 재정으로 충당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징병제폐지는 군부의 힘을 빼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그는 군인은 제대 후 8년이 지나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헌법 개정도 공약했다. 군부 쿠데타를 원천적으로 막는 법이다.

가장 뜨거운 주제인 '왕실모독죄'관련해서는 "최대 징역 15년까지 가능한 왕실모독죄는 누구든 자신도 모른채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집권 후 20여 석만 있으면 발의가 가능하다"며 법 개정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피타의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7개의 정당들 마저도 '왕실모독죄' 개정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이다. '왕실모독죄' 개정에 찬성하는 순간 수십여 년을 이어온 권력층에 등을 져야 한다. 피타는 "입헌군주제가 태국에 가장 적합한 제도"라고 인정하고 "'왕실에 대한 경험이 전혀 다른 세대간의 인식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외회에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4. “태국의 올해가 한국의 문민정부가 탄생한 92년이 되길”

경제 정책에 대한 이야기 중에 그는 "태국에서 관광업이 GDP의 20%를 차지하고 있지만, 오직 방콕과 촌부리(파타야), 푸껫, 치앙마이, 끄라비 등 5개 주만 혜택을 볼 뿐, 나머지 71개 주는 전혀 혜택이 없다"며 에너지와 전기차 등 신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피타 후보는 하버드를 졸업한 뒤, 매사추세스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보스턴컨설팅'과 '그랩'에서 임원으로 일했던 경험으로 '대림' 'CJ' '삼양' 같은 한국 기업들 이름을 줄줄이 알고 있었다. 한국의 코트라(KOTRA)와 콘텐츠진흥원(KOCCA)은 물론, 한국문화원을 언급하며 한국의 소프트파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드러냈다.

그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한국의 1992년도 기억했다. '지난 90년 초 군부정권이 막을 내린 뒤 30여 년간 한국의 경제규모가 6배 이상 커졌다'고 알려주자 "90년대 초 한국인들이 그릇된 정치체제에서 벗어났듯이, 올해 태국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태국 의회는 오는 7월까지 연정을 꾸려, 늦어도 오는 8월 초 쯤 총리를 선출한다. 피타가 집권한다고 해도 군부 등 기존 권력층이 이를 용인할 지는 미지수다. 태국에서는 입헌군주제 이후 모두 19번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중 탁신 가문(푸아타이당)이 두 차례 쿠데타로 실권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모두 141석을 얻어 제2당으로 전락한 푸아타이당이 피타와의 연정을 깨고, 군부 여당의 연정에 참여할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진다. 이 경우 군부는 상원의 지지를 받아 쉽게 재집권하고, 해외에 망명중인 탁신 전 총리는 귀국이 가능해진다. 피타와 피타에게 몰표를 던진 태국 유권자들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피타의 정치생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