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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책] 매주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7명의 처녀들이 상림원(上林園, 궁궐의 후원)으로부터 근정전으로 들어와서 덮개가 있는 교자(轎子, 가마)에 나누어 들어갔는데...... 사신이 친히 자물쇠를 채우고...... 건춘문(建春門, 경복궁 동문)에서 길을 떠나니 그들의 부모와 친척들이 거리를 막아 울면서 보냈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또한 모두 눈물을 흘렸다. (1427년, 세종 9년 7월 20일,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초기, 명나라로 공녀들이 떠날 때 부모와 친척은 물론 구경하는 백성들까지 모두 슬피 울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눈물로 공녀를 떠나보낸 다음 날, 실록은 임금의 비통함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처녀들이 갈 적에 어미와 자식이 서로 이별하게 되니 그 원통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427년, 세종 9년 7월 21일, 조선왕조실록)

실록이 보여주고 있듯이, 조선 초기 나라의 처녀들이 공녀라는 이름으로 명나라로 끌려가고는 했습니다. 누구도 공녀 되기를 원치 않았고, 그래서 공녀를 뽑을 때는 딸 있는 양갓집마다 폭탄 맞은 것처럼 비상이 걸렸지만, 결국 누군가는 공녀가 됐습니다. 그렇게 고향 땅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났고, 대부분 비운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달 중순 출간된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비극적인 역사였던 ‘공녀 제도’를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소설을 쓴 사람은 허주은 작가입니다.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이주해 캐나다에서 자랐고, 토론토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작가는 KBS 취재진과 인터뷰를 한 자리에서 소설 한 권이 자신을 한국의 역사로 안내했다고 말했습니다.

"영어로 번역된 한무숙 작가의 '만남'(정약용을 중심으로 초기 한국 천주교의 순교와 박해의 역사를 그린 소설)을 읽게 됐어요. '만남'은 제가 읽었던 첫 번째 한국 역사소설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한국 역사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역사를 더 공부하게 되었고요."

그렇다면, 허주은 작가는 넓고도 깊은 한국의 역사에서 어떻게 '공녀'라는 비극적 사건에 관심을 두게 됐던 것일까요? 작가는 고려 시대 이곡 선생의 글이 계기가 됐다고 말합니다.

"몇 년 전 여러 자료를 살펴보다가 고려와 조선 시대의 편지 등을 모아 놓은 '한국의 서한 문학'(Epistolary Korea / 김자현(JaHyun Kim Haboush) 지음)이란 책에서 고려 시대 이곡 선생의 글을 보게 됐어요. 충격을 받았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얘기는 알고 있었지만, 수백 년 전 공녀 제도라는 비극적인 역사가 있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거든요. 나중에 작품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됐어요. 그때는 제가 임신 중이기도 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허주은 작가는 소설가의 책무를 떠올렸다고 말을 이었습니다.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찢어놓을 정도로 고통을 준다면, 제가 할 일은...... 저는 작가잖아요. 글을 쓰는 게 일이잖아요. 그래, 글을 써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비극적인 역사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와 같은 역사를 잊지 않도록 펜은 들 수 있으니까요. 특히나 서양사람들은 한국 땅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게 소설을 쓰게 됐습니다."

허주은 작가가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이곡 선생의 글은 번역돼 나와 있습니다. 목은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은 '대언관청파취동녀서'(代言官請罷取童女書)라는 글을 통해 공녀 제도의 폐단을 얘기하고 폐지를 요청합니다. 이곡은 공녀를 데려가려는 사신이 올 때마다 닭과 개조차 편안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등 참상을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고려에서는 딸을 낳으면 곧 비밀로 하고, 오로지 소문이 날까 우려하여 비록 이웃이라도 볼 수 없다 합니다. 매번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얼굴빛을 바꾸면서 서로 돌아보고 말하기를 "왜 왔을까? 동녀를 구하는 것인가? 처첩을 데려가려는 건 아닌가?"라 합니다. 군리(軍吏)가 사방으로 집집마다 뒤지는데, 혹시 숨기거나 하면 그 이웃들을 잡아 두고 그 친족을 밧줄로 매어 채찍질과 몽둥이질을 하여 숨긴 딸을 찾은 뒤에야 멈춥니다. 한 번 사신이 올 때마다 나라 안이 소란해지니 닭과 개조차도 편안할 수 없습니다.
자료: '가정집' 권8, 서, 대언관청파취동녀서 / 우리역사넷

허주은 ‘사라진 소녀들의 숲’ 작가 [ⒸJulie Anna tang 미디어창비 제공]
허주은 작가의 소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조선 초기 공녀 제도로 인한 참상을 얘기하고 있지만,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도읍지 한양이 아닙니다.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 지역도 아닙니다. 명나라 땅도 아닙니다. 제주도입니다.

물리적으로 공녀 제도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그래서 별다른 영향도 없었을 것 같은 제주였지만, 공녀의 비극은 제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소설은 미제 사건 얘기로 시작합니다. 제주의 한 마을에서 열세 명의 소녀들이 사라집니다. 조선 최고의 수사관으로 불리던 민제우가 범인을 찾기 위해 제주로 떠납니다. 하지만 그 또한 실종됩니다.

소설은 자매의 얘기이기도 합니다. 서로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성장 환경까지 다른 언니와 동생이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의 모자란 점을 채워주고, 그래서 소설의 풍경은 일종의 '버디 무비' 같기도 합니다. 허주은 작가는 이 소설이 자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둘이 평소 사이가 좋지는 않았어요. 서로 싫어하기까지 했죠. 오해가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의 실종이라는) 위기가 찾아오고, 둘은 서로를 의지하게 됩니다. 자매는 제주에서 사라진 열세 명의 소녀들을 찾게 되면 그 사건을 수사하던 아버지도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소설은 함께 의문점을 풀어나가는 자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소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역사소설이자 미스터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주은 작가는 미스터리를 담고 있는 소설의 매력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언제 봐도 재미있습니다. 제가 읽은 책들 가운데도 크건 작건 미스터리를 소재로 삼고 있는 책들이 재미있었고요. 예를 들어,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조차도 '다락방에 누가 있는 거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들어 있잖아요. 그런 궁금증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허주은 작가는 미스터리를 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본성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의문점이 생겨나면, 왜 그런 것인지 그 이유를 알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는 궁금한 게 있으면 그게 왜 그런 것인지,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알고자 하잖아요. 무엇보다 다소간의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실을 찾아내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 그런 이야기는 언제나 저를 들뜨게 했습니다."

허주은 작가의 '사라진 소녀들의 숲'(The Forest of Stolen Girls)은 지난 2021년 북미에서 먼저 출간됐고, 미국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2022년 '에드거 앨런 포 어워드' 청소년 부문(Best Young Adult) 최종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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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2022년 12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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