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훈민정음’ 모서리에 푸른 비단…“일본 혹은 중국 기법”_마이크로프로세서 슬롯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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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책 모서리에서 파란색 비단으로 감싼 '포각'이 확인됐다.

세종이 1446년 한글 창제의 목적과 제자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간행한 역사적인 책인 훈민정음이 일본식 혹은 중국식으로 보수됐다는 또 다른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9일 학계에 따르면 훈민정음학회 초대 회장을 지낸 김주원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한글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한글' 제316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간송미술관의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포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포각은 훈민정음의 위쪽과 아래쪽에서 모두 확인됐는데, 특히 위쪽은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상태다.

김 교수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만든 책에서는 포각을 본 적이 있다"면서도 "조선의 전통적인 제책법으로는 이처럼 작은 책에는 포각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훈민정음·난중일기'에 함께 나온 책인 '동국정운 권1, 6'(국보 제71호)에는 포각이 없다고 설명했다. 동국정운은 1448년에 나온 책으로, 간행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김 교수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을 꿰매는 자리를 뜻하는 참안이 간송미술관 훈민정음에선 네 개라는 사실도 지적했다. 조선에서는 일반적으로 침안이 다섯 개인 '오침안정법'을 썼다. 현재의 훈민정음 같은 사침안정법은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된 기법이다.

그는 "훈민정음이 사침안이라는 사실은 1997년 안병희 서울대 명예교수가 찍은 사진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며 "포각과 사침안정법을 봤을 때 이 책을 보수한 방식은 중국식 또는 일본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1940년 직후에 책을 보수하면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간송미술관의 훈민정음은 경북 상주에 거주하는 배익기 씨가 2008년 공개한 이른바 '훈민정음 상주본'과 비교하면 책의 크기가 다르다. 훈민정음 간송본은 책 면 뒤에 한지를 발라 종이를 보호하는 '배접' 과정에서 여백 부분을 잘라 버렸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보통 조선의 책을 펼쳐놓으면 윗면의 여백이 아랫면의 여백보다 넓지만, 간송본은 위아래가 좁은 데다가 거의 비슷한 넓이"라며 "훈민정음 간송본은 보수 과정에서 위쪽 2.5㎝, 아래쪽 1.5㎝를 자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