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주인이 조선총독부?”…남은 적산(敵産)을 추적하다_베팅이 있는 북동쪽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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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하나 해보죠. 구청에 가서 건축물대장을 뗐습니다. 소유자 현황을 확인했습니다. '소유자 : 조선총독부' 누구라도, 눈이 확 뜨일 겁니다. 도무지 2019년에 있을 법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9년 실제 상황입니다. 대체 무슨 소리냐고요?

'적산가옥'은 알지만, '적산'은 모른다?

군산, 목포, 포항, 부산… 최근 이른바 '적산가옥' 투어가 인기인 곳들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근대식 일본 가옥을 분위기 있는 카페나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리모델링해 관광객들을 끌고 있습니다. '적산가옥'이라는 용어가 꽤 익숙해진 이유입니다.

군산을 필두로 지자체마다 관광 자원화 하고 있는 ‘적산가옥’. 일본인 밀집 거주지를 원형 보존하거나, 카페 등으로 리모델링해 관광객을 끌고 있다.
적산가옥 중 적산(敵産)은 무슨 의미일까요. 적산(敵産)은 '적의 재산'을 줄인 말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자국에 남은 적국(민)의 재산'을 뜻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당시 살았던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재산을 말합니다.

해방 후 적산은 국유화가 원칙이었습니다. 정부도 「귀속재산처리법」, 「귀속재산처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국유재산법」 등을 제정해 적산 환수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적산 환수가 부진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광복 이후 상당수 친일 인사가 득세했고, 좌우 이념 투쟁도 격화됐습니다. 6·25로 수많은 정부 자료가 소실되기도 했습니다. 5·16 이후에는 경제 부흥이 최우선시되면서, 과거사 청산은 뒷전으로 밀린 사정도 겹쳤습니다.

적산 환수가 지연되면서, 소유권이 뒤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응당 국유지로 전환됐어야 할 땅이 은근슬쩍 누군가의 사유지로 둔갑했습니다. 도심 한복판의 상당수 '알짜' 땅은 실세들에게 공짜로 불하되기도 했습니다. 그 혜택은 친일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건물 소유자, 조선총독부 체신국"…2019년 실제 상황

1940년대 서울 명동 일대의 지적도. 지금의 ‘남산동’에 해당하는 ‘남산정’이라는 일제 행정구역이 눈에 띈다. 명동의 한 필지는 지금도 건축물대장에 소유자가 조선총독부 체신국으로 등재돼 있다.
그런 식으로 적산 환수의 '골든 타임'은 지나갔습니다. 정부가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2012년 조달청을 주무기관으로 정해 환수에 나섰습니다. 서울 중구청은 자발적으로 TF를 구성해 나섰습니다. 이들의 고군분투는 칭찬받을 일이지만, 해방 70여 년이 지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은 난관의 연속입니다.

그렇게 지연된 정의의 결과가 바로, 건물 소유자를 '조선총독부 체신국'으로 등재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서류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신탁주식회사' 등 수탈의 첨병에 섰던 일제 회사들 명의가 지금도 살아 있는 사례도 있습니다.

일본 육군 보병 연대장을 맡았던 일본군 소장의 건물 소유권 기록도 여전히 남아 있었고, 경기 지역 일대를 주름잡던 일본인 대지주의 소유권도 아직 정리가 안 된 상태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경기도 양평군의 한 농가는 토지대장상 소유자가 ‘해원이구낭’으로 기록돼 있다. 누가 봐도 한국인 이름이 아니지만, 해당 서류는 지금도 유효하게 남아있다.
내일은 74번째 광복절입니다. 여느 광복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최근 일본과의 갈등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제 규탄은 누구나 공감할 일입니다. 허나 규탄만 하는 건 공허합니다.

청산이 반드시 동반돼야 합니다. 일제가 남긴 잔재는 놔둔 채, 규탄에만 열을 올리는 건 비유컨대 이른바 '정신 승리'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오늘 KBS 9시 뉴스는 '아직도 남은 적산(敵産)' 문제를 심층 보도합니다. 구체적인 실태는 어떤지, 늦었지만 확실한 대책은 무엇일지 고민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