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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뉴스7] ‘심장 소리’도 예술 작품으로…미디어아트의 진화

혹시 뉴스를 보다가 '아, 저런 소식은 날려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나요? 뉴스 내용 자체가 싫어서든, 아니면 그 뉴스를 전하는 매체의 시선에 화가 나서거든요.

그게 가능한 공간이 있습니다. 커다란 벽면에 KBS, 로이터, AP 같은 전 세계 언론매체의 기사가 비치고 있죠. 내가 그 앞에 서면, 내 그림자에서 연기인지 열기인지 모를 에너지가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으로 손을 뻗으면? 그 글자들이 '내 에너지'에 녹아 날아갑니다. 나는 뉴스에 섞여 들어가 뉴스를 움직이고 바꿉니다.


미디어아트 작가 라파엘 로자노헤머, 아시아 최초 대규모 기획전 개최

미디어아트 작가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Airborne Newscast라는 작품 얘깁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는 이 작가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대규모 기획전을 열었습니다.

미디어아트, 익숙하지는 않은 분야죠? 백남준이라는 선구자 덕분에 "아, 영상? TV?" 이렇게 떠올리다가, 그런데 그걸로 대체 뭘 어떻게 해서 예술이라는 건지 이내 갸웃하게 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겁니다. 이번 전시는 이런 사람들에게 비교적 친절하고 세련되게 미디어아트의 세계를 알려줍니다.


지문·맥박·목소리…관람객 '생체 정보' 입력해야 작동

전시를 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설치된 작품 대부분이 관람객의 지문을, 맥박을, 목소리를 요구합니다. 그게 싫으면 작품을 움직일 수조차 없죠.

"작품 안에 아무도 없다면,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 게 됩니다." 기자 간담회에서 작가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여하는 관람, 능동적인 대중은 이 작가, 그리고 나아가서 미디어아트가 목표로 하는 지점입니다. 관람객이 아니라 '조수'가 필요한 셈입니다. 작가의 역할은 그게 '아름답게' 가능하도록 최대한의 기술을 발휘하는 겁니다.


기술로 즐기는 예술, 미디어아트

네, 미디어아트가 설 수 있도록 자리를 펴고, 몸을 움직이는 건 기술입니다. 이 전시의 핵심적인 재미는 최첨단 기술에 있습니다.

사람이 다가가면 수십 개의 의자가 물결처럼 움직이고 Wavefunction , 내 목소리를 빛의 움직임으로 바꾸죠 Voice Array.

더 신기한 것도 있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 들어가면 우물처럼 생긴 수조가 있습니다. 들여다보면, 수증기와 물방울이 순간적으로 솟아올라 들여다보는 내 얼굴을 연기로 재현합니다. 백설공주의 " 거울아 거울아 .."로 시작하는 주문이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얼굴인식 시스템과 수백 개의 초음파 분무기가 있어 가능한 예술입니다.

"오늘날 우리 세대에게 기술은 언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자신한 작가의 말처럼 50년 전 백남준 시대에서 미디어아트 속 기술은 몇 단계 점프했습니다.


빛과 음악으로 변하는 관람객 심장 소리…'pulse room'

전시의 절정은 후반부에 찾아옵니다. Pulse Room이라는 작품입니다.

넓디넓은 방에 들어가 은색 손잡이를 잡고 15초간 기다리면, 내 심장 박동을 읽은 작품이 그 소리를 방 전체에 퍼뜨리고, 머리 위 전구들은 그 박동에 따라 깜박이죠. 방 전체에 내 심장 소리가 울리고, 이내 앞서 작품을 보고 간 다른 관람객들의 심장 소리와 합쳐지는 경험은 압도적입니다.

심장 소리가 꼭 클럽에서 울리는 비트 같다고 생각하다가 이내 좀 서글퍼졌습니다. 귀 기울여 듣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의 심장이 이렇게 힘차게 뛰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서요. 미디어아트를 '머리로 생각하는 차가운 예술'이라고 여겼는데, 직접 참여해 보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가 최초 공개 작품 5점을 포함해 26년간의 결과물 29점을 내놓는 전시회입니다. 그래설까요, 잘 차려진 코스 요리처럼 느껴졌습니다. 미디어아트에 익숙지 않아도 즐길만한 요소가 많죠.

다만 관람객이 참여해야 하는 전시 성격상 많은 사람이 몰리는 때엔 제대로 즐기기 힘들 수 있습니다. 만 2천 원이라는 입장료도 다소 비싸게 느껴졌습니다. 대학생은 8,000원, 초중고교생은 7,000원, 65세 이상과 장애인 유공자 등은 6,000원으로 할인받을 수 있습니다.

전시는 오는 8월 26일까지, 서울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근처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립니다. 관람 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오후 6시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