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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라운드(UR), DDA(도하개발아젠다). 말만 들어도 골치 아픈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선 그 말이 무슨 뜻이지 몰라 머리가 아팠고, 뜻을 이해한 뒤에는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하면서 머리를 싸매던 시절 말입니다. 물론 그때는 철없던 시절이라 농민들의 아픔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2019년 우리는 또 다른 시험대 위에 섰습니다. 바로 '개발도상국 지위'입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올라선 지 언제인데 아직도 개도국이야?' 하며 어리둥절하신 분도 계실 겁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고,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 수출 규모 세계 7위를 자랑하고 있는데, 웬 개도국?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까지 가입했는데 말이죠.

그럼 왜 '개도국'이 됐는지 과거로 돌아가 살펴보겠습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할 때에만 해도 회원국의 선언(self declaration)만으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런 사례입니다. 자랑스럽게(?) 손들고 개도국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당시 우리 농업이 개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농산품보다는 공산품 수출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듬해 OECD에 가입하면서도 농업과 기후변화 분야에서는 개도국 특혜를 받아 왔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경제 규모를 봤을 때 개도국이라 하기엔 다소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농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왜 개도국 지위를 갖고 난리일까요? 원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이고,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법입니다. 그 중심에는 세계 超강대국 미국이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다 어설픈 합의를 맺고 조용해진 듯합니다. 얼마 전까지 사납게 으르렁대던 '열전'이었다면 지금은 '냉전'입니다. 여전히 미국에 중국은 눈엣가시이고, 세계 '넘버 1'을 넘보는 무시무시한 도전자입니다. 그런 만큼 미국의 표적은 중국입니다. 미국은 중국을 겨냥해 '개도국 지위' 내려놓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지난 7월 2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일부 국가들이 WTO 개도국으로 불공평한 이득을 얻고 있다며 90일 내 WTO 개도국 지위 포기하라고 압박한 겁니다. 표적은 중국이었어도 저의는 '도랑 치고 가재 잡고'였을까요? 나머지 국가들에게도 불똥이 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기준을 살펴보겠습니다. ▲OECD 회원국(또는 가입절차를 진행 중인 국가) ▲G20 국가 ▲세계은행 분류상 고소득 국가(1인당 국민소득 12.056달러 이상)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5% 이상인 국가입니다. 여기에 포함되는 국가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눈치를 보는 사이 싱가포르와 브라질, 대만 등은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의도와 달리 결국 시선은 우리나라에 쏠리게 됐습니다. 앞서 살펴봤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OECD는 물론 G20에도 들어갔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를 넘습니다. 개도국 특혜를 누리는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조건을 모두 충족했습니다. 사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 등 전 세계 9개국뿐이라고 합니다. 자랑스러워해도 되겠죠?


하지만 현실은 냉정합니다.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으라는 시선이 더 따갑게 느껴지게 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시한은 지난 23일이었습니다. 정부는 농민단체와 잇따라 간담회를 했습니다. 네 차례 만났지만 농민들의 요구에 정부는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겠다고만 밝혔을 뿐,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간담회를 공개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승강이를 벌이다 간담회가 유마무야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의 선택은요?

우리 정부는 앞으로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선진국 반열에 오를 정도로 성장하다 보니 국제사회에서 개도국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겁니다. 미국이 제시한 기준에 속한 다른 나라들이 먼저 개도국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WTO 협상에서 개도국 혜택을 인정해줄 가능성이 없고, 대외적 명분과 협상력을 모두 잃어버릴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차기 WTO 협상이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는 만큼, 그동안은 특혜를 계속 누리면서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특혜 주장 안할 뿐 포기 아냐"…농업소득 보장하겠다

정부는 '농업 보호' 정책에 방점을 다시 찍었습니다. 쌀과 같은 민감품목에 대한 별도협상 권한을 확인하고, 개도국 지위 포기(forego)가 아닌 미래 협상에 한해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not seek)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다소 모호한 표현인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정부는 세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미래의 WTO 농업협상에서 쌀 등 국내 농업의 민감분야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미래의 WTO 농업협상 결과 국내 농업에 영향이 발생할 경우 피해 보전대책을 반드시 마련하고, ▲우리 농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책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농업인 소득안정과 경영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공익형 직불제의 조속한 도입을 위한 법(농업소득보전법) 개정과 안정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합니다. 특히 내년 예산안에 공익형 직불제로의 전환을 전제로 직불금 예산안을 대폭 증액(올해 1.4조 원 → 내년 예산안 2.2조 원)해 국회에 제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역 단위 전통 먹거리 소비기반 마련과 주요 채소가격 안정제 등 국내 농산물의 수요기반을 넓히고 수급조절기능을 강화합니다. 이밖에 청년영농정착기금 제도 등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에 필수인 청년ㆍ후계농 육성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농민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약속에도 우리 농업이 지켜질 수 있을지, 생존 기반과 삶의 터전을 잃지는 않을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영향이 없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농산물 관세 인하와 보조금 축소로 우리 농업에는 큰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설명에도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농림축산식품부 담당자와 Q&A를 진행해 봤습니다.

- 개도국 특혜는 언제 없어지나요?
= 개도국 특혜를 포기해도 차기 협상 전까지는 바뀌는 것이 없고 차기 협상 계획은 현재 없습니다. 내년에 12차 WTO 각료회의가 열리는데 2년마다 개최되는 것으로, 협상은 아닙니다. 그래서 개도국 특혜가 언제 해소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특히 농업협상이 정지된 상태여서 언제 재개될지도 모릅니다.

- WTO 협상과 별개로 미국이 관세, 보조금 인하를 요구하지 않을까요?
= 아닙니다. 미국은 차기 WTO 협상에서 포기하라고 명시했습니다. 또 한미FTA는 쌀 빼고 모두 개방돼서 미국한테 인하할 것이 없습니다. 보조금은 미국과 직접 상관이 없어서 관심도 없습니다.


- 그렇다면 쌀 개방(관세 인하)을 요구할 가능성은요?
= 크지 않습니다. 지금 TRQ(Tariff rate Quotas·저율관세할당물량:정부가 허용한 일정 물량에 대해서만 저율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높은 관세를 매기는 것)에서 미국이 적지 않은 물량을 가지고 가기 때문입니다. 미국에게 쌀은 중요품목이 아닙니다. 쌀 생산자가 7,000가구 정도밖에 안 될 겁니다. 더욱이 우리 정부는 이번에도 쌀을 지킨다고 명시했습니다.

-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AMS(농업보조금총액) 자료를 근거로 앞으로 보조금이 반 토막이 날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는데요. 이 자료는 맞나요?


= 해당 자료는 08년에 논의됐던 4차 수정안에 근거한 겁니다. 이미 논의가 종료된 문서에 근거할 자료이기 때문에 더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WTO 회원국의 의무 변동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전체 회원국 차원의 총체적인 협상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공은 던져졌습니다. 하늘로 솟구친 공을 누가 잡아서 어느 방향으로 던지느냐. 이것이 중요해졌습니다. 정부는 쌀을, 우리 농업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 농민들이 일손을 놓고 집회 현장으로 나오지 않게 소득 보전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에 와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외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식량 전쟁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은 거라 단언할 수 없는 이상 '식량 주권'을 지켜야 하는 겁니다. 정부는 '통상 주권'을 포기한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번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이번 선언도 협상력을 갖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면 좋겠지만, 최소한 '불리한 구석'에 몰리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