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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애를 그렇게 때려! 얼굴에 반성하는 빛이 없어! 내가 울분이 안 가신다." 윤 일병 폭행사망사건 재판이 열린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 내 법정이 소란스러워졌다. 5일 오전 10시에 시작한 재판이 약 20분 만에 끝난 뒤 시민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퇴정해야 하니 통제에 응해달라'는 군법정 관계자들의 요구에도 시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둘씩 법정 앞으로 다가왔다. 대기석에 앉아 있는 가해자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 병장이 누구냐"는 질문부터, "너희는 재수 없어 걸린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이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갖은 폭행과 가혹행위 끝에 목숨을 잃은 만 스무 살 청년의 죽음에 국민이 치를 떨고 있다. 군 인권센터가 모집한 시민감시단은 이날 오전 8시 서울 광화문에서 45인승 버스 2대에 나눠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이곳에 도착했다. 시민감시단 숫자만 80명에, 개별적으로 법정을 찾은 시민들도 더러 있었다. 구성은 남녀노소 다양했다. 취재진까지 더해져 10평 남짓한 작은 법정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날 법정에선 가해자 6명(구속 5명·불구속 1명)이 변호인과 나란히 앉아 재판에 참여했다. 재판 관할을 제3야전군사령부로 이전 신청하고 숨진 윤 일병 성기에 안티푸라민 연고를 바른 이 병장에게 강제추행 혐의를 추가 적용하는 절차만 진행됐다. 가해자들의 진술 시간은 따로 없었다. 윤 일병의 가족들은 법정에 오지 않았다. 이모(25) 병장과 하모(22) 병장, 이모(22) 상병, 지모(20) 상병 등 병사 4명과 유모(22) 하사 등 5명은 상해치사와 공동폭행 등의 혐의로 지난 5월 2일 기소됐다. 한때 자신도 피해자였다가 폭력의 가해자가 된 이모(20) 일병은 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구속된 이들에 대한 살인죄 적용 여부는 국방부 감찰단에서 법리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해자들은 고개를 떨어뜨리지도,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 등 특별한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윤 일병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주범 이모(25) 병장은 태연한 태도로 대기석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이따금 불안한 듯 두 손을 만지작거리는 모습 외에는 자세의 변동이 없었다. 이 병장은 머리를 엉성하게 길러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말년병장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여드름이 숭숭한 얼굴에 새치가 많고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체격은 보통이었다. 시민들은 나란히 서 있는 군 관계자들 사이로 이 병장의 얼굴을 쳐다본 뒤 격한 감정을 드러내다가 오전 10시 40분이 넘어서야 모두 법정을 빠져나왔다. 이날 시민과 취재진이 군사법정에 들어오는 절차는 전혀 까다롭지 않았다. 신분증만 있으면 자유로이 부대 출입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군사법원은 군부대 내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재판이 진행돼왔다. 서울 성수동에서 온 김모(24)씨는 "여기 들어와도 괜찮은 것"이냐고 묻더니 "군 복무 중인 남동생이 군 가혹행위는 근절됐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이제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군사범죄가 아닌 구타 가혹행위 사건 등은 모두 일반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건이 벌어진 사단에서 재판을 진행하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나 피해 가족의 처지에서는 쳐다보기도 싫은 곳을 또 방문해야 하는 셈이 된다. 시민들은 샌드위치 패널로 된 임시 건물로 지어진 법정 밖으로 나와 사망한 윤 일병에게 보내는 종이비행기 편지를 날리는 퍼포먼스를 마지막으로 부대를 떠났다.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는 부대 정문에는 이들이 떠나고 난 뒤에도 보라색 풍선과 리본이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