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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는 2011년 프랑스에서 영구 임대 형식으로 외규장각 의궤 297책을 돌려받은 이후 10여 년 동안 축적한 다양한 연구 성과를 확인하고 외규장각 의궤의 가치를 다시금 돌아보는 뜻깊은 자리입니다.

의궤(儀軌)란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을 줄여서 한 단어로 만든 것으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란 뜻입니다. 국가와 왕실의 중요한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한 의궤는 같은 한자 문화권의 다른 나라에는 없는, 조선왕조만의 독창적인 기록물이죠. 그래서 유네스코도 세계기록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한 겁니다.

2003년에 새로 지은 강화도 외규장각 (사진출처: 위키백과)
그중에서도 외규장각 의궤의 가치는 더 큽니다. 의궤는 화재나 도난, 분실 등에 대비해 대개 5~9부를 만들어서 규장각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나눠서 보관했는데요. 그중에서도 왕이 직접 열람한 '어람용' 의궤는 당대 최고의 장인과 화가들이 최상의 재료로 만든 최고급 의궤였습니다.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은 바로 이 '어람용'을 주로 보관했던 곳인데,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을 약탈해 의궤 297책을 가져가 버렸죠. 그걸 장장 145년 만에 돌려받았으니, 의궤는 실로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더구나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297책 가운데 무려 290책이 '어람용'이란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직 외규장각 의궤가 번역되지 않아서 한문에 해박한 사람이 아닌 이상 구체적인 내용이 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다행히도 의궤에는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그림이 실려 있어 '눈 맛'이 상당합니다. 그중에서도 행사의 행렬이나 참여한 사람, 동원된 기물의 위치를 표시한 '반차도(班次圖)' 속엔 뜻밖에 흥미로운 장면들이 꽤 많습니다.

■하다 보면 절로 빠져드는 의궤 속 '숨은 그림 찾기'

의궤 속 반차도를 보면 등장인물의 자세가 십중팔구 거의 똑같습니다. 국가와 왕실의 중요한 행사에 참여한 누군가가 '딴 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반차도를 그린 화원(畵員) 역시도 이 엄중한 행사의 장면을 자기 마음대로 그릴 수는 없었겠죠. 만약 그랬다간 경을 칠 일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에도 예외란 있는 법. 화가도 사람인데 그 많은 사람을 다 똑같은 자세로 복사해서 붙여넣듯 그리면 얼마나 재미가 없었겠어요. 주어진 '틀'을 소박하게나마 깨는 화가의 '변용'은 그래서 보는 이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줍니다.


〈인조국장도감의궤〉의 한 장면
죄다 깃발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을 때, 이 아저씨만 혼자 깃발을 한 손으로 잡고 있습니다. 뭔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도 모르죠. 왼쪽 팔을 다쳤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정말 두 팔로 잡는 게 힘들어서 잠시 한쪽으로 옮겨 잡았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장면은 화가가 진짜 저런 자세를 한 인물을 보고 그대로 옮겨 그린 건 아니겠죠. 만약 실제로 저 장면을 목격하고 그린 거라면, 화가로선 현장 사생이라는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다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까지?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의 한 장면
똑같은 자세로 몇 시간이고 버텨야 했을 테니 힘이 안 들고 배길 턱이 없죠. 그래서 두 손 모아 앞으로 가지런히 정자세를 유지한 사람들 뒤에 저 두 분은 어깨에다가 잠시 걸쳐 놓았습니다. 이 또한 화가가 실제 장면을 보고 그대로 옮겨 그린 걸까요? 뭐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화가의 생각이 저런 모습을 만들었을 수도. 저걸 계속 두 손으로 들고 있으면 얼마나 팔이 아플까, 하고 말이죠. 그 깨알 같은 노고에 대한 깨알 같은 보답이라고나 할까.

같은 의궤에는 이런 장면도 있습니다.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의 한 장면
다들 묵묵히 앞을 보고 걸어가는데, 저 맨 뒤에 두 분은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궁금해지죠. "야, 이거 언제 끝나는 거야?" "이따 끝나고 막걸리 한 사발 할 거나?" 보는 이의 상상에 맡기는 것, 그것이 화가가 이 장면을 슬쩍 그려 넣은 의도가 아니었을까. 이런 장면은 또 있습니다.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의 한 장면
역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군요. 제가 찾아낸 건 이 두 장면뿐입니다만, 제가 놓친 게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런 장면들은 인간적이죠. 행사도, 그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저 특별한 변용 하나가 숨 막힐 듯 무거운 행사에 작은 숨통을 틔워줍니다. 옛사람들은 대체 저기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내가 저 자리에 있었더라도 진짜 답답했을 거야, 여러 상상을 가능하게 해주죠.

왕이 직접 보는 의궤에 이런 그림을 그려 넣고 화가는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주상전하도 요건 못 찾아내실 걸?" 혹시 조선의 어느 임금 중에서 이 깨알같이 숨은 그림을 발견하고는 슬며시 미소 지은 분이 계셨는지도 모르죠. 그런 상상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줍니다.

■의궤 속 뜻밖의 '씬스틸러'를 찾아낸 왕이 있었을까?

그런가 하면, 반차도 행렬에 꽤 자주 보이는 특별한 존재가 있습니다. 방상시(方相氏)라는 건데요. 방상시는 원래 중국의 신(神)으로, 곰의 가죽을 두르고 네 개의 황금 눈이 박힌 가면을 썼으며 손에는 창과 방패를 든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방상시는 악귀(惡鬼)를 쫓는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요.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의 한 장면
제가 지금까지 반차도에서 본 방상시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모습과 자세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무기를 휘두르는 역동적인 자세,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 소매의 옷 주름까지 세밀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저 작은 그림을 저토록 가는 선으로 정교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채색까지 해놓은 화가의 기량이 놀랍죠.

이 장면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또 하나의 인물은 창 끝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으악, 하고 놀라는 수레꾼의 모습입니다. 뭔가 꺼림직하니까 뒤를 돌아다봤는데 아뿔싸, 눈앞에서 날카로운 창끝이 어른거립니다. 저런 장면을 의궤에 그려 넣을 줄 알았던 화가의 재치가 돋보이죠. 알고 봐도 공포감을 주는 방상시에 놀란 수레꾼이여! 당신을 의궤 속 최고의 '씬스틸러'로 인정합니다!

〈단의빈예장도감의궤〉의 한 장면
〈숙종국장도감의궤〉의 한 장면
그런데 꼭 그렇게 무섭게만 그린 건 아니었으니, 방상시를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경우도 꽤 있습니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딱 하고 무릎을 쳤죠. 이건 텔레토비다! 맨 처음 소개한 방상시와 비교하면 화가의 기량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보는 맛이 덜하죠. 심지어 수레는 대체 어디에다 팔아먹었는지 두 발로 걷는 방상시도 있더군요.

〈정조건릉천봉도감의궤〉의 한 장면
그리고 의궤 속 방상시 중에서 절대 빼놓아선 안 될 존재를 발견하였으니…

〈인현왕후국장도감의궤〉의 한 장면
산타 아닌가? 방상시 산타! 붉은 두건에 옷이며, 덥수룩한 수염까지 영락없는 산타의 모습입니다. 게다가 수레는 썰매를 연상시키죠. 루돌프 사슴이 아닌 사람이 끈다는 것만 빼면 크리스마스를 앞둔 이 시기와 참 절묘하게 어울리는 장면입니다. 만면에 미소를 띤 방상시의 모습에서 악귀를 쫓아내는 존재가 주는 무서움은 온 데 간 데 없습니다. 실제로 행사에 등장한 방상시가 저런 모습이었다면, 행렬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무척이나 즐거웠겠죠. 산타 방상시도 의궤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씬스틸러'입니다.

■함께 즐길 때 가치가 더 빛나는 우리 문화유산

조상이 남겨준 과거의 유산은 그저 과거에 고착된 구시대의 소산이 아닙니다. 그걸 물려받은 우리 후손들은 그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면서 우리 나름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그 문화유산을 아끼고 가꾸고 즐기면 되니까요.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에는 외규장각 의궤를 소개한 별도의 공간(https://www.museum.go.kr/uigwe/)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궤 속 반차도 58건을 자유롭게 감상하고 각 장면도 쉽게 내려받을 수 있죠.

혹시 조선시대 그림에서 말 궁둥이를 보신 적 있나요? 예나 지금이나 특정한 동물을 그릴 때는 그 동물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방향과 각도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말 그림은 대체로 머리부터 꼬리까지 전신을 다 볼 수 있는 옆모습이 많죠. 그런데 딱 하나, 의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말의 '뒤태'입니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별의별 말 궁둥이가 죄다 모여 있으니 궁금하면 박물관 누리집으로 고고(G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