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지휘없으면 경찰은 수사를 말아먹을까?_잘 조사해보면 도박이다_krvip

검찰 지휘없으면 경찰은 수사를 말아먹을까?_앞으로의 베타 생활_krvip

지난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조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됐습니다. 이제 이들 법안은 언제든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는데요.

검경 수사권 조정이 가시화되자,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검찰발' 언론 보도를 통해 쏟아지고 있습니다. 여러 언론이 인용 보도한, 김우현 수원고검장이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을 한번 볼까요.

김우현 고검장은 "과도한 경찰권 집중과 실무적 문제점을 지적한다" "현 법안의 문제점에 대해 대다수의 법률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점으로 경찰에 '수사 종결권 부여', 검사의 '수사지휘권 폐지'와 '수사 개시권 제한' 을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검찰이 아무리 미워도 검찰조직의 순기능까지 무력화시키고 기존 검찰보다 더 거대하고 통제 불능인 경찰을 만들어 낸다면 그 책임은 현 정부의 몫"이라며 정부를 겨냥했는데요.

정말 수사권이 조정되면, 선출되지 않은 살아있는 권력인 검찰을 뛰어넘어, 통제 불능의 경찰 괴물이 탄생하는 걸까요? 경찰의 반박 내용을 중심으로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수사 지휘권'입니다.

그동안 검사는 사건을 수사단계부터 방법을 비롯해 진행 방향 등을 지휘한 뒤, 기소 여부까지 결정하는 두 가지 권력을 동시에 행사해 왔습니다. 수사권이 조정되면 수사를 온전히 경찰의 힘에 맡기게 됩니다. 만약 경찰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처리하지 않거나, 부실 수사를 하는 등 이른바 수사를 말아먹어 버리면 어떻게 할까요?

검사의 수사 지휘 1조항 삭제, 새롭게 생긴 경찰에 대한 통제조항은 최소 6가지

경찰의 반박은 단호합니다. 수사권이 조정돼도, 검사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수사권 남용 등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시정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 정당한 이유 없이 경찰이 이에 불복한다면, 해당 경찰에 대한 '징계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검사가 자료를 검토하고 싶다면 '사건기록 송부 요구권'을 행사하면 됩니다.

이 밖에 영장 청구 단계에서도 검사는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고, 여전히 많은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설 수 있습니다. 경찰도 같은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럼 검사가 우선권을 갖습니다.

다음으로 경찰이 수사를 마음대로 종결해 버릴까 두렵다는 '수사 종결권'도 살펴보겠습니다.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보내지도 않고, 대충대충 처리해 종결해 버리면 어떻게 할까요?

우선 검사는 검찰에 송치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사건기록을 검토한 뒤, 문제가 있다면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경찰은 송치하지 않은 사건의 기록이라도 검찰에 보내야 하는 '송부 의무'가 주어집니다.

피해자 같은 사건 관계인이 경찰의 수사가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하면 해당 사건은 경찰의 수사 종결권과 무관하게 검찰에 강제 송치됩니다. 검사가 다시 살펴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한마디로 지휘를 하지 않을 뿐, 견제 내지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게 경찰 설명입니다.

특히 경찰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수사와 관련해 경찰과 검찰의 판단이 다른 것을 예로 들며, 수사권이 조정돼 책임 소재가 분명해진다면 오히려 비슷한 논란은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울산시장 측근 비리 수사의 경우, 검사가 수사지휘와 기소권을 동시에 행사하는 현 체제에서 진행됐는데도 경찰과 검찰의 판단이 달랐던 사례인데요. 수사권이 조정되면 오히려 각각의 기관의 책임 소재가 명확해져 왜 다른 결정을 했는지 분명하게 따져볼 수 있게 된다는 게 경찰 판단입니다.

일각에서는 경찰의 권한이 커지면 선거 중립 등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굳이 경찰의 반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검찰이 경찰보다 정치적 중립을 잘 지킬 수 있는 조직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겁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대한민국에서 핵심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조직이니만큼 정치적 중립성은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목표이지만 동시에, 상당히 도달하기 어려운 과제니까요. 결국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 구축과 사회적 감시는 둘 중 어느 한 조직에만 해당되는 말일 수는 없을 겁니다.

물론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에는 경찰 책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건 사고 소식마다 지적되는 초동 수사 부실 문제, 수사역량 향상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등 더 많은 권한을 가져오는 만큼의 개혁과 혁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안 상정을 앞두고 쏟아내는 검찰의 반응은 국민의 안전권이나 권익을 걱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검찰만이 할 수 있다'는 식의 '검찰은 무오류의 존재'라는 자기 확신의 결과물인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우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