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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salary peak), 정년을 보장하되 일정한 나이부터 임금을 깎는 제도다. 익숙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직장에서 꽤나 보편화 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잠시, 과거로 가보자.

2013년 이른바 '정년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6년 1월부터 근로자의 정년을 만 60세로 늘리기로 했다. 노동계가 선물을 받은 셈이니, 경영계에도 뭔가 하나 줘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임금피크제다. 근로자가 어느 나이 이상이 되면 임금을 깎자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이 정년연장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덜고, 청년 채용에 나설 여력도 생긴다는 논리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도입된 만큼 임금피크는 큰 반발 없이 안착하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임금피크를 둘러싼 법원 소송이 빠르게 늘고 있다. 무슨 속사정이 숨어 있을까.

1. 최저임금도 안되는 임금피크 봤어요?


취재는 제보에서 시작됐다. 제보자는 A 신용정보업체에서 20년 넘게 재직했다. 원래는 삼성생명 직원이었지만, 사업부 조정에 따라 2000년대 초반 해당 업체로 적을 옮겼다.

제보자가 다닌 A사의 임금피크 구조는 아래 그림과 같다. 만 56살이 된 지난해, 제보자의 임금은 1년 전의 반 토막이 됐다. 올해는 거기서 또 10% 줄었다.


문제는 2024년과 2025년이다. 임금피크 설계에 따르면, 퇴직 직전 2년 동안 제보자가 받을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미달한다. (올해 최저임금인 9,160원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그렇다. 최저임금이 더 오르면, 2023년도 최저임금에 못 미칠 수도 있다.)

제보자는 '최저임금도 안되는 임금피크를 본 적이 있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사실, 본 적이 없다. 이 정도로 큰 폭으로 감액하는 임금피크 설계 자체가 매우 낯설었다.

2. 임금 감액, 어디까지 괜찮길래

그렇다면, 제보자가 적용받는 임금피크는 얼마나 박한 것일까. 후한 회사부터 박한 회사로 줄을 세운다면, 몇 번째 정도일까. 안타깝게도, 알 방법이 없다.

임금 자체가 노사 합의의 대상이듯이, 임금피크의 감액 수준도 노사 자율의 몫이다. 그래서 얼마를 깎는 것까지는 괜찮고, 얼마 이상 깎으면 안 된다는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이유로 정부가 국내 임금피크 설계 현황 전체를 조사한 적이 없다. 민간 차원의 실태조사도 당연히 없다. 모든 회사가 자신의 임금 테이블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데이터 수집 자체가 어렵다.


정부 자료에서 확인 가능한 정보는 도입 실태 정도다. 2021년 현재 직원 300명 이상인 회사의 52% 정도만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이라고 한다. 누구나 가장 궁금해할 정보는 빠진 알맹이 없는 통계다.

단, 다수의 노동 전문가들에게 물었을 때 답은 대동소이했다. "이 회사, 박해도 너무 박하네요." 제보자가 다니는 A사의 임금피크제가 문제가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A사는 지난해부터 임금피크에 돌입한 직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10명 중 8명 이상이 자진 퇴사를 선택했다. 이렇게 박한 임금피크는 사실상 '회사를 나가라.'라는 신호라는 것이다.

3. 임금피크에도 위아래가 있다?

앞서 말했듯, 임금피크의 내용은 노사 합의 사항이다. A사의 노조 또는 직원 단체는 왜 이렇게 박한 임금 감액률에 합의해 준 것일까. 임금피크 도입 당시에 A사에는 노조가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임금피크를 둘러싼 분쟁이 큰 회사들은 대부분 노조가 없거나 힘이 매우 약하다. 반대로 노조가 있거나 강한 경우는 임금 감액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A사는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이 공동 출자한 회사다. 생명보험 업계 빅3가 대주주로 있는 일종의 공동 자회사인 셈이다.

모회사 격인 대주주 회사 3곳의 임금피크를 A사와 비교해봤다. 임금피크 기간은 동일했다. 만 56살에 시작해 5년에 걸쳐 계단식으로 임금이 줄어든다. 그러나 감액 폭은 크게 차이 났다.


대주주 회사 3곳은 임금피크 시작 전 임금의 310%~410%를 받는다. 5년 동안 3년에서 4년 치 급여를 받는다는 얘기다. A사는 190%에 그친다. 2년 치 급여도 안 된다.

4. 공정한 임금피크, 모색 가능할까

임금피크는 속성상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쉬운 구조다. 여유 있는 노동자는 더 보호받고, 여유 없는 노동자는 더 손해 본다.

물론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개입하기는 쉽지 않다. 임금피크 역시 임금 제도의 하나이고, 임금은 노사가 자율 합의로 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제보자와 같은 A사 직원들이 기댈 유일한 해법은 소송이다. 그간 임금피크의 유효성을 두고 다툰 소송을 찾아봤다. 10여 건 확인할 수 있었다. 판결에서 일관된 기준을 찾기는 어려웠다.

'임금의 감액이 어디까지 괜찮은 것이고, 어디부터는 안되는 것인지' 정부의 기준이나 가이드라인 자체가 없어서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판결이 춤을 추는 것이다.

그나마 그런 판단을 받는 데조차 최소 1년~2년이 걸린다. 회사가 작심하고 항소하면, 말 그대로 기약이 없다. 그 사이 임금피크 기간은 다 지나가고, 퇴직이 다가온다.

추정컨대, 임금피크 적용받는 근로자는 최소 백만 명 이상일 것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 만큼 임금피크에 돌입하는 노동자는 끝없이 나올 것이다.

최소한의, 낮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라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대문사진 : 박세은
인포그래픽 : 권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