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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38년 동안 시신조차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 가족들은 애타는 기다림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곽선정 기자가 이들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들의 모습은 앳된 고등학생에 멈춰 있습니다.

1980년 5월 22일. 계엄군을 피해 학교 뒷산으로 간 임옥환 씨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임 씨 부모는 광주시내를 헤집고 다녔지만 아들의 흔적을 찾지 못했고, 당시 목격자들을 수소문해 어렵사리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임준배/행방불명자 아버지 : "아들을 어떻게 찾아가지고 나 살아있을 때 땅에다 묻어야 눈을 감고 가겠다..."]

80년 5월 20일 이웃 주민과 기름을 사러 나갔다 길이 엇갈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정기영 씨.

여러 차례 행불자 신청을 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습니다.

가족들은 사망 신고도 하지 못한 채 매년 5월이 되면 제삿상을 차립니다.

[정호화/미인정 행방불명자 아들 : "절망적이고 이게 진짜 심사가 투명하게 되나 의구심도 갖고. 5·18 워크샵(자료집) 보면 공무원의 허위,왜곡,부실 조사가 사실로 확인되면 인정된다고 나와있습니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

이 가운데 6명은 2001년 5.18 묘역의 무명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지만 76명은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도 24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차종수/5·18기념재단 연구원 : "80년 6월에 당시 군인들이 내려와서 시신을 발굴해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처리됐는가에 대해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고인의 유해라도 찾고 싶다는 것이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