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징계 피해가는 지방의원…제명 요구도 거부_차카라 두 베토 피라시카바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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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독재라는 말은 국회나 중앙 정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민을 위한 봉사자를 자처한 기초의회에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광주광역시 북구의회 본회의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비장한 발언이 나왔습니다. 진보당 소속 손혜진 의원이 절대 다수인 민주당 소속 구의원들을 겨냥한 말이었습니다. "의회 스스로 자정 능력이 없음을 보여줬다", "대의 기관의 권위를 떨어뜨렸다"는 표현도 이어졌습니다.

손 의원이 이렇게 날을 세운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비리를 저지른 의원을 제명하라는 징계 요구를 동료 의원들이 거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광주 북구의회에서 ‘신상 발언’ 중인 손혜진 의원.
■ 비리 의원 '제명 권고' 무시한 광주 북구의회

물의를 빚은 이는 '수의계약 비리'를 저지른 재선의 기대서 의원입니다. 자신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업체들이 구청 계약을 따내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겁니다.

법원은 1·2심 모두 기 의원에게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지방의원 직위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였습니다.

[연관 기사] 이권 개입한 구의원, 징계 낮춰준 동료의원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90691

기 의원은 북구의회 소속인 만큼 의회 징계가 뒤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징계 절차는 의혹이 불거진 지 3년이 훌쩍 넘은 올해 9월에야 시작됐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 2심 결과가 알려져 비판이 커지자 마지못해 움직였다는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광주 북구의회 본회의장의 기대서 의원석.
늦은 징계는 약했습니다. 외부 인사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최고 수위의 징계인 '제명'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권고안을 받아든 윤리특별위원회는 징계 수위를 '출석정지 30일·공개 사과'로 낮췄습니다. "3심이 남았다", "제명은 지나치다"는 이유였습니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에도, 2주 뒤 본회의에서 징계안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 광주·전남 지방의원 징계 현황 분석…결과는?

이렇게 지방의원 징계가 유명무실한 현실이 비단 북구의회만의 일일까요? KBS광주 취재진은 광주·전남 지역의 광역·기초의회 29곳에 정보 공개를 청구하고 회의록 자료를 확인해 징계 현황을 들여다봤습니다. 분석 결과, 몇 가지 시사점이 드러났습니다.

① 징계 많은 의회, 적은 의회 따로 있다

2018년부터 2023년 10월까지 5년여 동안 광주·전남 광역·기초의회 29곳에 회부된 징계 안건은 현재 진행 중인 1건을 포함해 30건, 징계 대상 의원은 중복을 제외하고 25명이었습니다. 평균을 내면 5년간 지방의회 1곳당 1건 정도의 징계 안건이 나온 셈입니다.

출처: KBS광주 정보공개 청구 및 지방의회 회의록 분석 결과
그런데 지역별 편차가 컸습니다. 광주 북구의회가 9건으로 가장 많았고, 강진군의회 7건, 광주시의회 5건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5년 동안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의회가 20곳으로 전체의 70%에 육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지방의회는 '청정 지대'였던 걸까요?

② 정당은 징계해도, 의회는 징계하지 않는다

취재진이 내놓은 답은 '그렇지 않다'였습니다. 왜냐하면, 문제를 일으켜 정당 징계를 받았는데도 지방의회의 징계 절차는 논의조차 안 된 사례가 허다했기 때문입니다.


분석 기간인 2018년부터 최근까지 광주·전남 지방의원들은 숱한 물의를 빚었습니다. 지역 주민을 폭행한 군의원도 있었고, 이태원 참사 기간에 음주 폭행 시비를 일으킨 도의원도 논란이 됐습니다. 또 보건소 직원을 의원 사무실로 부르는 '황제 접종'에 연루된 시의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해 소속 정당인 민주당의 징계 절차는 진행됐지만, 정작 소속 의회의 징계는 받지 않았습니다. 징계 안건 자체가 올라오지 않은 겁니다. 문제가 있어도 의회 소속 의원이나 의장이 징계 요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징계 대상 아님'이 '제명'보다 더 많다

지방의원의 징계는 가장 약한 '경고'부터 '사과', '30일 이내의 출석정지', '제명'으로 나뉩니다. 분석 대상 30건 가운데 경고는 3건, 사과는 6건, 출석정지 처분은 12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최고 수위인 제명은 3건으로 10%를 차지했습니다.

출처: KBS광주 정보공개 청구 및 지방의회 회의록 분석 결과
하지만 제명보다 더 많이 내려진 처분은 '징계 대상 아님'이었습니다. 5건으로 전체의 16%를 기록했습니다. 이 가운데는 2019년 거짓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의원 2명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④ '제명'은 쉽지 않고, '출석정지'로 자주 바뀐다

어렵게 징계 절차에 착수했더라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엄벌'은 잘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습니다.

'죄질'이 가장 나쁘다고 볼 수 있는 지방의원들의 비위는 어떤 것일까요? 여러 문제 가운데 의원 지위를 이용해 수의계약 등으로 이권에 개입하는 행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예산 심의라는 권한을 갖고 사익을 챙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분석 대상 징계 안건 30건 중 7건이 이런 사유였습니다. 의원 본인·배우자 소유 업체가 자치단체의 건설 사업을 맡도록 한다거나, 지방의원이 꽃집을 운영하며 자치단체에 직접 꽃을 납품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비위 행위에 대해 '제명'은 한 차례도 없었고, 출석정지와 경고 등으로 끝났습니다.

정보공개 청구로 확보한 지방의회 징계 자료 중.
애써 '엄벌'을 하기로 했어도, 최종 결과로 이어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징계 수위가 최종 결정되기 전 외부 권고(윤리심사자문위) ·내부 의결(윤리특위)로 논의된 징계 수위가 뒤집힌 경우는 3건으로 나타났습니다.

비율로는 전체의 10%로 높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눈에 띕니다. 원안을 뒤집은 결정 모두 '제명'을 '출석정지'로 바꿔 준 사례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주 북구의회 기대서 의원의 사례처럼 '제명은 너무 심하다'는 온정주의가 힘을 발휘한 결과입니다.


⑤ '내부 갈등'으로 인한 징계가 가장 많았다

'일벌백계'라고 하죠.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리는 게 징계입니다. 하지만 광주·전남 지방의원의 최대 징계 사유는 흔히 생각하는 개인 비위 행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출처: KBS광주 정보공개 청구 및 지방의회 회의록 분석 결과
징계 사유를 들여다보고 유형화해 보니 특이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의원 간에 벌어진 폭행·폭언·성희롱, 의장 선거를 놓고 벌어진 다툼 등으로 촉발된 징계가 13건으로 최다를 차지한 겁니다.

이 대목은 ②번 항목으로 든 '정당은 징계해도, 의회는 징계하지 않는다'는 점과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지방의회가 정작 징계할 만한 사유는 징계하지 않고, 내부 갈등과 반대 여론을 억압하는 데 징계를 자의적으로 활용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 정치 혐오 부채질하는 지방의원 징계 문제

출범 30년이 넘은 지방자치의회는 툭하면 '폐지론'에 직면합니다. 직접 지방의원을 뽑은 유권자들마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냅니다. 상식에 반하는 지방의원들의 행보, 징계 제도가 있는데도 이를 묵인하거나 봐주는 동료 의원들의 행태는 정치 혐오를 부채질합니다.

이런 점에서 끝까지 동료 의원의 제명을 요구했던 손혜진 의원의 발언 내용은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우리 원 스스로가 주민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주민을 위한 의정 활동을 펼쳐나가겠다는 것인지, 또 행정의 난맥상을 짚는 구정 질문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손혜진 의원, 2023. 10. 18. 광주 북구의회 본회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