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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석 앵커 :

잠시 영상으로 1991년의 세계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정초에 3차 세계대전의 예고편이 아니냐 하는 우려 속에 전개됐던 걸프전은 미국 외교의 승리로 어떻게 보면 싱겁게 끝났습니다.

미국은 그러나 걸프전의 승리를 계기로 중동 평화회담과 대대적인 핵무기 감축을 이끌어냈습니다. 정필모 기자가 걸프전을 정리해 드립니다.


정필모 기자 :

1991년 새해벽두 다국적군의 바그다드 공습으로 시작된 걸프전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 재편의 서곡이었습니다.

걸프전은 이라크의 지역 패권주의를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33개나라 68만여 명의 병력과 각종 첨단무기가 동원됨으로서 처음부터 다국적군의 일방적 승리가 예견됐습니다.

그러나 세계인들은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에 생화학 탄이 장착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 전쟁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스커드 미사일을 요격하는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섬광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상공에 번쩍이고 지난 2월24일 다국적 지상군의 대공세가 시작되면서 걸프전은 다국적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전쟁 시작 42일 그리고 전면 지상전이 시작 된지 100시간 만의 일이었습니다.


부시 종전 선언 (2월 28일) :

어느 나라도 이번 승리를 독차지 할 수는 없습니다. 쿠웨이트 뿐만 아니라 모든 다국적군 파견국의 승리이며 인류의 법과 정의를 위해 싸운 유엔의 승리입니다.


정필모 기자 :

세계인들은 불꽃놀이 같다는 표현으로 걸프전을 묘사했지만 전재의 결과는 너무나 참 혹했습니다.

다국적군의 승리는 사실상 전쟁을 주도한 미국의 승리였으며 미국이 탈냉전 시대의 유일한 초 군사강국이 됐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미국 국민들에게 월남전 이후 상실했던 세계 초강대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일깨워 주는 동시에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걸프전의 승리를 바탕으로 곧바로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지역의 질서개편 작업에 나섰습니다.

걸프전 종전이후 8차례에 걸친 베이커 미 국무장관의 중동순방 결과 지난 10월 아랍당사국들과 이스라엘이 사상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 하는 중동 평화회의가 열렸습니다.

중동 평화회담은 올해 획기적인 결실은 없었지만 회담 자체의 의미는 매우 큰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됐습니다.

세계질서를 주도하는데 자신감을 얻은 미국은 지난 9월 모든 지상 전술핵무기를 일방적으로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부시 핵감축 선언( 9월 26일) :

미국은 모든 지상 발사 단거리 핵미사일을 폐기할 것입니다.

모든 핵포탄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파괴할 것입니다.


정필모 기자 :

소련도 어쩔 수 없이 이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서 냉전시대 이후 줄곧 계속된 미. 소의 핵무기 대결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반면에 걸프전에서 전쟁비용의 절반이상을 부담하고도 전후 처리과정에서 소외됐던 경제대국 일본과 독일은 걸프전을 계기로 군사 재무장과 해외파병을 추진하기로 시작함으로서 충격을 던지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