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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을 정치의 영역 에서 완전히 과학의 영역 으로 끌고 와야 된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입법영향분석 기획보고서 발간 기념 간담회에서 박상철 국회 입법조사처장이 한 말입니다.

입법은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조율되는 과정 끝에 하나의 안을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한다'는 '정치'의 사전적 의미를 떠올려 볼때 , 입법은 곧 정치 그 자체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입법을 정치의 영역에서 끌어내야 한다니,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요?

■ "편익 0.525 > 비용 0.475" … 입법의 '과학화'

박 처장의 말은 '입법의 과학화'가 필요하다는 걸 강조한 겁니다.
그 바탕에는 입법영향분석 제도가 있습니다. 법률안이 시행됐을 때 예상되는 영향을 객관적·과학적 방법으로 예측·분석하는 시스템입니다. 법이 시행됐을 때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최대한 구석구석 미리 따져보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법안의 효과를 '숫자'로 가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비타당성 조사에서처럼 법의 편익과 비용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아래 분석서를 사례로 볼까요. 입법조사처가 주택법 개정안, 병역법 개정안, 의료법 개정안 등 3가지를 놓고 입법영향분석을 해봤습니다.

주택법 개정안('층간소음방지법')은 바닥충격음 성능검사 결과를 입주 예정자가 확인할 수 있게 해 층간소음을 줄이게 하고 부실시공을 예방하기 위한 법입니다.

병역법 개정안('병역면탈정보 유통방지법')은 병역의무 기피 ·조장 정보 유통을 금지하는 법입니다.

의료법 개정안('개인의료 데이터 전송법')은 의료 데이터 주체가 본인의 데이터를 개인의료데이터 활용기간으로 전송 요구할 경우, 의료기관에서 제공을 허용하도록 하는 법입니다.




층간소음방지법의 경우 입법영향 분석을 해봤더니, 편익이 비용보다 훨씬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법을 개정했을 때 시공비 증가 등 건설업계 우려가 많지만, 그럼에도 종합적으로 득이 더 많다는 게 보고서의 판단입니다.

병역면탈 조장 방지법 역시 수사 당국과 포털 사이트 운영자의 부담이 증가할 수 있음에도 법 개정 시 이득이 더 많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 데이터와 관련한 비용·편익을 평가할 정도의 데이터가 없어 비용·편익 분석은 생략했지만 대신 6개 이해관계자와 부처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이처럼 법안의 실질적인 효과를 따져서 입법 정당성을 높이는 동시에 부실·졸속 입법을 막자는 게 입법영향분석 제도입니다.

■ '관련 전문가' 6명의 점수… 믿을 수 있을까?

입법영향분석 제도는 이제 막 도입 단계인 만큼 갈 길이 멉니다.

우선 법률안의 효과를 숫자로 뽑는 것이 가능한지, 타당한지가 문제입니다.

앞서 입법조사처가 제시한 주택법·병역법에서 사용한 영향 분석 조사에는 5~6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했습니다. 이 전문가들은 '관련 전문가', '법률 전문가(변호사)'들로만 소개돼 있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익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이력과 활동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보고서를 받아든 입장에서는 신뢰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해관계자가 매우 많거나 AI 등 미래 기술과 관련한 법 등은 영향을 미칠 범위를 가늠조차 하기 힘들어 비용·편익 분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 "엄청난 입법 서비스" vs "입법권 제한" … '민감 법안'은 어떻게?

입법조사처는 이 같은 입법영향분석 보고서가 "(입법자인 국회의원들에게) 엄청난 서비스와 혜택"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국회의원들은 입법권이 제한된다고 우려합니다.

지난해 8월 관련 논의가 가장 최근에 있었던 국회 운영위에서는 "또 하나의 '게이트키퍼'를 만드는 것"(이용우 의원)이라는 우려와 "법안 발의할 때마다 보고서를 내라는 것이냐"(배진교 의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또 '검수완박', '노란봉투법' 등 논란이 되는 법안들은 영향분석 자체가 정치적으로 휘말릴 여지가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최대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제시해 의원들이 법안 심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서 "이런 과정이 누적되면 국민적 신뢰가 쌓일거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입법영향분석을 전담하는 '처' 신설도 논의되고 있는데, 조직과 그에 따르는 인력·예산 보강이 뒤따르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