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통은 죄가 없다”…문제는 ‘정책 신뢰’_악마 포커를 하고 있다_krvip

“화장품 통은 죄가 없다”…문제는 ‘정책 신뢰’_쓰나미 카지노 리조트_krvip


■ '화장품 통'은 재활용 못 해요?

네, 대부분 어렵다고 보면 됩니다. 재활용 등급은 4단계로 나뉘는데요. 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 이렇게 4개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화장품 10개 중 8개는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네요. 2020년 환경부가 연구용역을 진행했더니 1,928개 화장품 포장재 중 84.8%인 1,634개가 재활용 '어려움' 등급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화장품 통은 디자인이 중요한 탓이겠죠. 업계에선 "소비자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화려한 색과 디자인이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여기에 화장품이 변질되지 않도록 업계에선 진공, 자외선 투과 방지 같은 기능성 용기까지 새로 개발되는 추세라는데요.

화장품 용기를 재활용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 뜨거운 감자된 '화장품 통'

환경부 보도자료 갈무리 (환경부, 22.2.27)
그래서 환경부가 화장품 통에 '재활용 어려움'이라는 문구를 의무적으로 표기하라는 정책을 내놓습니다. 1년 전 일입니다.

업계는 즉각 반발했죠. "힘들게 만든 화장품 디자인을 저해한다. 이는 결국 국내 화장품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화장품 업계가 묘안을 짜냈습니다. 바로 '역회수'입니다.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표시 기준, 환경부 고시>
제5조(평가결과 표시의 적용 예외)

의무생산자가 자체 회수 체계 등을 갖춰 포장재의 회수율이 2023년까지 15%, 2025년까지 30%, 2030년까지 70%를 충족할 수 있다고 환경부장관이 인정한 경우

쉽게 말해 다 쓴 화장품 통을 업체가 직접 회수하고, 대신 '재활용 어려움'이란 문구는 안 쓰기로 한 겁니다. 환경부와 화장품 업계는 규정을 만들고, 협약도 맺었습니다.

■ '역회수'의 결말

그런데 이 제도 실패입니다. 당초엔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굴지의 화장품 대기업은 물론 록시땅 같은 글로벌 유명 업체도 역회수 참여를 타진해 왔는데요. 그런데 정작 제도가 시행되자 모두 발을 뺐습니다.

이유는 환경부가 제시한 역회수 목표치 때문입니다. 앞서 보여드렸던 규정을 보면 2023년까지 15%, 2030년까지 70%를 회수하도록 했죠. 업체들은 이 숫자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역회수를 하겠다고 나선 업체는 단 1곳. 그것도 매출 100억 규모의 비교적 작은 회사였는데요. 문제는 이 업체 역시 올해 회수율이 0%라는 겁니다. 1년간 아무런 용기도 회수하지 않았다는 얘기인데, 해당 업체는 여전히 '재활용 어려움' 표시 의무를 면제받고 있답니다.

그나마 이렇게 실적이 없어도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도 않습니다. 규정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주어지는 불이익 조항이 규정에는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 일회용컵, 비닐봉지 그리고 화장품 통


화장품 통 얘기를 들으시면서 무언가 떠오르지 않으셨나요? 맞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회용컵과 비닐봉지 논란과 매우 흡사합니다.
먼저 일회용품은 지난달 24일부터 식당·카페·편의점 등에서 전면 금지됐습니다. 편의점에서는 비닐봉투를 팔 수 없고, 식당에선 종이컵이나 빨대, 젓는 막대 같은 일회용품을 쓸 수 없습니다. 규칙을 어기면 과태료가 300만 원 이하나 됩니다.

그런데도 일회용품을 쓰는 곳이 보이는 이유는 제도 시행 직전 '계도 1년'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1년간 예고기간을 뒀는데, 갑자기 계도 기간을 또 1년 추가하면서 정책 취지가 퇴색됐단 비판이 나왔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회용컵을 사용하면 300원을 더 내게 하고, 회수할 때 돌려주는 제도인데요.

당초 6월부터 전국 시행 예정이었지만, 12월로 연기된 바 있고요. 지역도 제주와 세종으로 한정됐습니다. 그마저도 지역 내 업체 중 3분의 1가량이 '참여 보이콧'을 하고 있습니다.

환경부도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세계적으로도 처음 시도하는 제도"라면서 "일상 속 국민 마음을 읽어야 하는 정책이다 보니, 시행착오를 잡을 기회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충분히 이행할 만큼 준비가 되면, 계도기간이나 전국 확대 등 절차를 밟겠다는 게 환경 당국의 입장입니다.

■ 무너진 '정책 신뢰'…돌파구는 없나?

환경단체에서 ‘재활용어려움’ 등급의 용기를 분류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사진 제공 : 녹색연합, 21.2.25)
환경 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런 환경 정책에 날 선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녹색연합은 역회수 정책 관련 성명에서 "환경부는 무리하게 제도를 반영하고 전혀 책임지지 않고 있다"면서 "불필요한 사회 논란이 지속될 것이고, 다른 산업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자원순환 정책에 대해 "지금 국민 사이에는 환경에 대한 컨센서스(합의)가 존재한다"면서 "정책 단순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습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도 "이대로면 정책 신뢰도가 흔들릴 수 있다"면서 "국민 환경인식이 높아져도 결국엔 거버넌스(국정운영)로 풀어야 하고, 정교한 정책 결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결국 갈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일회용품 덜 쓰고, 재활용률 올리는 길입니다. 말은 쉽고 실제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부 규제로 접근하는 건 더 만만하지 않겠죠.

그래도 모두가 알고 있는 불편한 길로 안내할 역할, 환경부가 맡아야 합니다. 어려운 과제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 일입니다.

(대문사진:원소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