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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두환 씨는 12·12 군사 반란과 5·18 민주화 운동 무력 진압이란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11대, 12대 대통령을 지냈지만, 역사적 과오와 그 과오에 대한 사과가 없던 탓에 역사에 그는 시민을 학살한 군사 독재자라는 오명으로 남게 됐습니다.

강병수 기자입니다.

[리포트]

5.16 군사 쿠데타 지지로 정치 군인의 길을 걷다, 1979년 유신 통치 종말과 함께 정치 전면에 등장한 전두환 씨.

12·12 군사 쿠데타로 정국을 장악합니다.

[전두환 씨/1979년 12.12 직후 : "여기 정의감에 불타는 모든 서울 주변에 있는 지휘관들이 즉각 본 사령관을 지지해 주고..."]

그리고 민주화 요구가 들끓던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고 광주에는 공수부대를 투입해, 5.18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했습니다.

국가 권력이 시민 학살을 자행한, 현대사의 상처를 남깁니다.

전 씨는 이후 국정을 장악합니다.

[전두환 씨/1980년 9월, 제11대 대통령 취임식 : "새역사 새 시대를 창조하려는 우리의 국민적 의지와 민족사의 진운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재임 기간, 88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고, '3저 호황'으로 경제 성장은 이어졌지만, 줄곧 언론을 탄압했고, 민주화 요구를 억압했습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 열사 사망, 삼청 교육대, 모두 전 씨 재임 중 기록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씨에 대한 저항의 과정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전 씨는 1987년, 민주화 열기 속에서도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다 국민 저항에 부닥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씨/1987년 4.13 호헌조치 : "본인은 온 국민의 정치적 결단으로 탄생된 이 헌법을 끝까지 준수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결국, 퇴임 뒤엔 책임 추궁을 받게 됩니다.

5공 비리와 쿠데타, 5.18 유혈 진압으로 법정에 선 그에게 1심은 사형, 대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수감 2년 만에 특별 사면됩니다.

[전두환 씨/97년 12월 석방 : "교도소 생활이라는 게,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그것만 내가 얘기하고 싶습니다."]

전 씨는 5.18 당시 상황과 관련한 재판의 결심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전 씨 사망으로, 5.18에 대한 두번째 법적 단죄는 마무리되지 못하게 됐습니다.

KBS 뉴스 강병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