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은 2년 동안 어떤 미술품을 사들였을까?_부스타_krvip

국립현대미술관은 2년 동안 어떤 미술품을 사들였을까?_포키 전략 게임_krvip

▲육명심 [예술가의 초상 시리즈 - 박두진], 1966/2017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76.2×50.7cm

여기, 흑백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두 손을 양 볼에 붙여 괸 채 가만히 두 눈을 감았습니다.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 까닭에 자연스럽게 흐릿해진 배경으로는 온갖 책이 빼곡하게 꽂힌 책장이 놓여 있군요. 원고지, 안경, 펜, 그리고 책... 이런 물건들은 사진의 주인공이 글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줍니다. 쓰고 또 쓰기를 이어가다 잠시 펜을 놓고 가만히 사색에 잠긴 걸까요.

사유하는 시인의 얼굴

사진작가 육명심은 예술가들의 얼굴을 찍어 왔습니다. 사진 속 얼굴은 청록파 시인 중 한 분으로 널리 알려진 박두진 선생입니다. 사진작가의 대학 시절 스승이었죠. 이 사진은 1966년에 촬영됐습니다. 육명심 작가에게는 문인과 예술가들의 초상 사진을 찍게 된 출발점이 된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박두진 선생은 시를 쓰기 전에 이런 모습으로 조용히 명상에 잠기곤 했다고 합니다. 사유하는 시인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 사진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최근 이 사진을 구입했습니다. 사진이 찍힌 건 1966년이지만, 미술관이 구입한 사진은 2017년에 디지털 잉크젯으로 프린트한 작품이더군요. 원본은 필름의 형태로 남았고, 반세기가 넘은 뒤에 디지털로 뽑아낸다...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기 힘든 사진의 운명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이중섭 [정릉 풍경], 1956, 종이에 연필, 크레용, 유채, 43.5×29.4cm
생의 막바지에 완성한 이중섭의 그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이중섭의 그림입니다. 생의 막바지에 정신 질환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극도로 피폐해진 이중섭은 1955년 겨울 서울의 성베드루신경정신과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해 정릉으로 갑니다. 여기서 동료화가인 한묵이 묵고 있던 하숙방 바로 옆방을 얻어 당시 정릉에 살던 화가 박고석 등과 어울려 지냈죠. 이 시절에도 이중섭은 그림을 계속 그려 나갔습니다.

정릉 시절 그림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 <정릉 풍경>(1956)입니다. 그리고 그해 9월 이중섭은 끝내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죽음이 임박한 시기의 그림이라서 그런지 화면에 온통 쓸쓸함이 가득합니다. 결국, 그림이라는 건 그린 이의 내면을 반영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좌)도리이 노보루 [생도들], 1944, 89.5×116cm, 캔버스에 유채·(우)안도 요시시게 [자리 파는 여자], 1927, 60×72cm, 캔버스에 유채
미술관의 현재와 미래를 보다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 건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입니다. 작품을 구입해서 소장하고 때에 맞춰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미술관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술관이 최근에 구입한 미술 작품은 당연히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 사들인 소장품을 보면 미술관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볼 수도 있고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최근 2년 동안 수집한 작품은 모두 458점입니다. 미술관 측은 2017년과 2018년에는 한국 근대미술과 아시아 미술에 중점을 두고 작품을 수집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도리이 노보루의 <생도들>(1944)과 안도 요시시게의 <자리 파는 여자>(1927) 등 일본 근대 화가들의 작품입니다. 특히 안도의 작품은 당시 부산의 시장 풍경을 담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좌)이응노 [배렴 초상], 1946년경, 19.2×27.5cm, 종이에 수묵담채·(우)박찬경 [소년병], 2017,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한 35mm 연속상영, 16분
작가와 유족에게 듣는 작품 이야기

특히 사진과 뉴미디어 분야에서 수준 높은 작품을 소장하게 됐다는 게 미술관 측의 설명입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은 총 8,382점이라고 하는군요. 사진은 위에서 보여드렸듯 육명심을 비롯해 한영수, 김녕만 등 한국 사진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들이 포함됐습니다. 한국화로는 고암 이응노의 <배렴 초상>(1946년경)이 주목되고, 뉴미디어 분야에서는 미술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박찬경의 <소년병>(2017)을 비롯해 여러 작품이 새로 미술관에 소장됐습니다.

미술관들은 이렇게 새로 수집한 작품을 모아서 대중에게 공개하는 전시회를 엽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2017년과 2018년에 새로 구입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를 통해 작품의 제작과 소장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미술관 학예연구사뿐 아니라 해당 작품의 작가와 유족 등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최근 미술관의 취향이 궁금하다면 이 전시를 주목해볼 일입니다.

한스 하케 [아이스 테이블], 1967, 91.4×92×49cm, 스테인리스 스틸, 냉동장치
■전시 정보
제목: <신소장품 2017-2018>
기간: 2019년 9월 1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 원형전시실
작품: 회화, 조각, 공예, 디자인, 사진, 영상 등 총 150여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