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내가 할게, 들러리는 누가 할래?” [세계엔] _행운의 내기 축구_krvip

“주인공은 내가 할게, 들러리는 누가 할래?” [세계엔] _컴퓨터 슬롯이 뭐죠_krvip


■ G7 맞불?…중앙아 5개국 모은 중국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19일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과 정상 회담을 했습니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5개국 정상이 참석했습니다.

이들 국가는 옛 소련에서 독립한 뒤 30년 넘게 중국과 수교를 유지해 왔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정상회의를 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직 러시아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이다 보니 중국이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분위기가 좀 달라졌죠. 서방 제재로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가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게 됐습니다. 기회다 싶은 중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관계 쌓기에 나섰습니다.

지난 18~19일 중국 시안에서 열린 중-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 모습. 왼쪽부터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 카심 조마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세르다르 베르디무함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 (로이터)
중국이 이렇게 세를 불리는 이유, '미국 견제'입니다. 회담 뒤 나온 중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의 공동 성명에는 주권과 영토 보전 같은 '핵심 이익'을 상호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타이완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실크로드 프로젝트, '일대일로' 공동 건설을 위해 협력한다는 점도 강조됐습니다. 사실 이번 회담이 열린 장소가 '시안'이라는 것만 봐도 회담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오래된 도시 시안은 옛 실크로드의 출발점입니다. 최근 주춤하는 '일대일로'의 새로운 동력을 찾으려는 중국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 이탈리아가 빠진다고?…흔들리는 시진핑의 꿈

'일대일로'는 중국몽을 꿈꾸는시 주석의 가장 핵심적인 외교 정책입니다. 중국 서부~중앙아시아~유럽을 육상으로 잇고, 중국 남부~동남아~아프리카~유럽은 바닷길로 잇겠다는 야심 찬 계획입니다.

문제는 추진 10년이나 된 이 정책이 갈수록 삐걱거린다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업이 중단됐던 데다, 뒤이은 인플레이션과 세계 경기 하락에도 타격을 받고 있죠. 무리하게 일대일로 사업에 발을 담갔던 파키스탄 등 여러 개도국, 신흥국들은 국가 파산 위기에 몰린 상황입니다.

여기에 G7 국가로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있는 이탈리아가 발을 뺄 수도 있다고 알려지면서 중국은 더욱 당혹스러워졌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최근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일대일로에서 빠지고 싶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에 중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과 이탈리아 모두 풍성한 성과를 거뒀다"며 협력 강화를 촉구했습니다.

지난 4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오른쪽)가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왼쪽 뒷모습)과 만나고 있다.
■ "나도 할 거야" …미국의 반격

그러는 사이 미국까지 반격에 나섰습니다. 중동 내 아랍 국가들을 철도망으로 잇고, 중동과 인도는 뱃길로 연결하기 위한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한 겁니다. 말하자면 '미국판 실크로드'입니다. 미국과 인도,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로 구성된 4자 간 협의체(I2U2)가 내놓은 아이디어로, 처음부터 중국에 대항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미국은 이 사업을 '중동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확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달 초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사우디를 직접 방문하고 이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통적으로 미국 우방으로 분류되는 사우디는 최근 중국과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 '주인공은 나야 나'…바빠진 들러리들

사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사우디만이 아니죠. 미-중의 주인공 싸움에, '들러리'를 서게 된 국가들은 모두 치열한 눈치 게임 중입니다.

특히 유럽의 고민이 깊어 보입니다. 안보적으론 미국과 한편이지만, 경제적으론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안보 위기가 커지면서 미국과의 군사 동맹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반면 팬데믹이 끝나고 글로벌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하자 유럽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 시장의 중요도 역시 더욱 커졌습니다.

지난 12~1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럽연합 외교장관 이사회.
그러다 보니 중국에 대응하는 유럽의 행보는 '갈지 자'로 보입니다. 유럽연합(EU) 외교장관들은 지난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회의를 열고 '대중국 전략문서'를 작성했는데, 타이완 유사시에 유럽연합이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에 하나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하면 유럽연합 차원에서 개입한다는 겁니다.

동시에 미국의 중국 따돌리기(반도체 '디커플링')에 대해서는 '일부만' 동의한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도체·인공지능(AI) 등 미래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중국을 규제하겠지만, 미국과 입장을 똑같이 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G7 안에서도 유럽은 중국 규제에 비교적 부드러운 입장에 서 있습니다. 미국의 한 싱크탱크 산하 기관은 "(중국 규제에 있어) 미국과 일본은 단합돼있지만, 유럽은 매우 주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점을 중국도 모르지 않겠죠. 지난주 중국 고위 간부들은 줄줄이 유럽에 방문했습니다. 한정 국가부주석은 10~12일 네덜란드를, 친강 외교부장은 8~12일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를 잇달아 찾았습니다. G7 정상회의에 맞선 '선제 공격성' 외교전이라는 풀이가 많았습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레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오른쪽 앞),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운데), 찰스 미셸 유럽이사회 의장(왼쪽 앞)이 19일(어제) G7 정상회의 일환으로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해 나무심기를 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이번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유럽은 '오랜 베스트프렌드' 미국의 변함 없는 지원군이 될까요? 혹은 '흔들린 우정'을 보여주게 될까요? 아니면 '제3의 길'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