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도 살기 바쁜데…” 어버이날이면 더 쓸슬한 노인들_누가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는가_krvip

“자식들도 살기 바쁜데…” 어버이날이면 더 쓸슬한 노인들_베토 파로는 누구인가_krvip

"자식들도 먹고살기 바쁜데 어버이날이라고 뭘 기대하는 게 나쁜 부모지…."

어버이날을 이틀 앞둔 6일 오후 따뜻한 봄볕이 쏟아지는 서울의 주요 공원과 복지관 등에서 만난 70∼80대 노인 대다수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성북구 월곡동에 사는 김선균(79) 씨는 "어버이날도 평일이다 보니 자식들이 못 찾아와도 그러려니 한다"며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다들 바쁘니 전화라도 한통 해주면 그게 고맙다"고 했다.

도봉구 방학1동에 사는 이모(74·여)씨는 "딸 둘이 있는데 일하느라 바빠 한 달에 한번 볼까 말까"라며 "어버이날에도 못 온다고 전화가 왔다. 어버이날에 아무 계획도 없지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손모(80)씨는 "어버이날에도 아들놈이 바쁘지 않겠느냐"면서도 "알아서 연락하겠지. 뭐 기다려봐야지"라며 아들의 방문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이날 탑골공원에는 홀로 벤치에 앉아있는 노인이 많았다.

대부분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했지만, 한참을 지켜봐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노인과도 별 대화가 없었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2014 노인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가운데 자녀와 함께 사는 비율은 1994년 54.7%에서 2004년 38.6%, 지난해 28.4%로 급감하는 추세다.

노인의 대부분(97.7%)은 자녀가 있었고 평균 자녀 수는 3.4명, 손자녀 수는 5.5명에 달했지만, 노인 부양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면서 혼자 살거나 노부부끼리 생활하는 가구가 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구립 실버센터에는 치매·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환을 앓는 노인 73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 센터는 어버이날을 맞아 9일 '카네이션 달아드리기' 행사를 열 계획이지만 참석하겠다는 자녀가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센터 측은 전했다.

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박모씨는 "센터가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지만 휴일이나 주말에 부모를 보러 오는 자녀는 20명 선에 불과하다"며 "9일 행사에는 30명 정도가 참석한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독거노인 등 132명을 지원하는 도봉재가노인센터의 최미선 팀장은 "지원하는 분들 가운데 열댓 명을 제외하고는 가족과 왕래가 없는 분들"이라며 "어버이날이면 다들 더 외로워하시고 어떤 어르신들은 먼저 센터에 연락해 전화 좀 자주 해달라고 부탁하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다들 사정이 어려워 어버이날이라고 따로 찾아뵙는 경우도 드물고 용돈 드릴 형편도 못 된다"며 "우리가 모금한 것으로 어버이날에 지원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자녀가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에게는 어버이날이 더 괴롭다.

도봉구 쌍문동에서 혼자 사는 오모(73·여)씨는 "5년 전 아들이 '어버이날 내가 갈게요' 하더니 4월에 먼저 떠나버려 혼자가 됐다"며 "자식 없는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씁쓸해했다.

오씨는 "어버이날 같은 때는 옆에 사람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내가 그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어버이날을 맞아 마음껏 효도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돼 마음아픈 사람도 있다.

2007년 탈북해 남한으로 넘어온 김순례(42·여·가명) 씨는 "북한에는 딱히 어버이날이라는 게 없는데 남한에 오니 부모님을 위한 날이 있어 놀랐다"면서 "나 같은 처지인 사람들은 매년 이맘때면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는 "재작년까지는 함경북도에 사시는 일흔 되신 부모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작년부터 북의 통제가 심해지면서 도통 소식을 듣지 못해 가슴이 답답하다"면서 "곁에 계시기만 한다면 정말로 효도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