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기서 나와?”…‘사법농단’ 얽힌 기성회비, 학생 외면한 국회·법원_버그 도스 슬롯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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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회비'→'학생지도비' … 이름만 바뀐 채 지급

KBS는 국립대 10곳에서 '학생 지도비' 94억 원이 부당하게 교직원들의 수당으로 지급됐단 소식 지난 이틀간 자세히 전해드렸습니다.

KBS 취재 결과 이 '학생 지도비', 정작 학생들은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현직 교직원 조차도 이 제도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학생 지도비'는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학생 지도비'의 시작에는 대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에 50년 넘게 포함돼있던 '기성회비'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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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심은 학생들 '승' … 국회 입법은 학생 '외면'

지난 2010년 국공립대 학생 3천 8백여 명은 각 대학 기성회에 기성회비를 반환해달란 소송을 제기합니다.

학생들은 학교가 기성회비를 받을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대학들이 기성회비를 학교 시설 확충 등 본래 목적과 달리 교직원들의 급여 보조 등으로 쓰고 있단 점도 지적했습니다.

시민단체에서는 등록금의 절반 넘게 차지하는 기성회비를 인하하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도 완화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1, 2심 재판부 모두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기성회비를 회원들이 내는 자율적 회비로 봤습니다. 법에 정해진 수업료와 성격과 취지가 다르므로, 학칙에서 기성회비를 규정한 것은 잘못됐다고 봤습니다. 학교들이 학생들로부터 기성회비를 징수할 법적 근거가 없단 것입니다.

재판 결과가 나오고 유사한 기성회비 반환 소송이 잇따르자 국·공립대학들은 기성회비 없이는 대학 운영 자체가 어렵다며 난색을 보였습니다. 당시 학교 운영비의 70% 정도를 기성회비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2015년 3월, 19대 국회에서는 대학회계를 만들고 기성회비를 공식적으로 폐지하는 내용의 법을 제정합니다.

가. 이 법은 「고등교육법」에 따른 공립대학에 대하여 준용함.
나. 국가는 국립대학의 교육·연구 및 교육환경 개선 등에 필요한 재정을 안정적으로 지원해야 하고, 국립대학에 대한 지원금의 총액을 매년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함.
다. 재정위원회의 일반직 위원에 해당 대학의 교원, 직원, 재학생을 각각 2명 이상 포함하도록 함.
라. 국립대학에 국가 지원금과 대학의 자체수입금을 통합·운영하는 대학회계를 설치하고, 국립대학의 장은 대학회계를 운영함에 있어 재정 건전성의 확보, 학생·학부모 부담의 최소화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함.
마. 국립대학의 장은 소속 교직원에 대하여 대학회계의 재원으로 교육·연구 및 학생지도 등을 위한 비용을 지급할 수 있음.
바. 국립대학의 장은 종전의 기성회 직원을 이 법에 따라 대학회계가 설치된 때에 대학회계직원으로 신규 채용하고, 보수·복무 등의 근로조건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함.
사. 법률 제12174호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 부칙에 같은 법에 따른 국립학교 및 공립학교의 2015학년도 등록금에 대해서는 같은 법 제11조 제7항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특례를 신설함.

법의 내용은 국립대 재정의 안정적 지원, 기성회 직원들의 노동조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직원에 대해 대학회계의 재원으로 교육·연구 및 학생지도 등을 위한 비용을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학생지도비'가 만들어졌습니다.

학생들의 기성회비 반환 소송으로 촉발된 법이었지만, 학생에 대한 내용은 '학생.학부모 부담의 최소화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한 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이 통과된 뒤, 국공립대 등록금 고지서를 보면 기성회비는 이름만 사라진 채 금액은 수업료에 고스란히 통합돼 징수됐습니다. 취재진이 분석한 결과에서도 법 통과 이전과 법 통과 이후의 수업료 액수는 같았습니다.

등록금 부담을 낮춰달란 학생들의 호소와 1, 2심 판결 취지 모두 어긋난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임은희 대학연구소 연구원은,

"대학에서 기성회비를 통해 대학 운영비의 부담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두어왔던 것이 관행으로 이어졌었다"며 "기성회비 소송의 취지를 생각하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방식으로 갔었어야 하는데, 입법이 회계를 통합하는 정도로 바뀌었기 때문에 재정 부담은 그대로 학생들이 지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 대법원서 뒤집힌 기성회비 반환소송...대법원은 왜?

법이 통과된 뒤 3달 뒤인 2015년 6월, 1.2심 법원의 결정이 뒤집어집니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은 국립대학들이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기성회비를 받았고, 학생과 학부모 역시 동의해 기성회비를 낸 것이라며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또 교육 목적에 맞게 기성회비가 쓰였다면 부당 징수가 아니라며 파기환송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기성회를 통해 국립대학의 설립자, 경영자인 국가에 납부한 것을 두고 국가나 기성회들이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거나 그로 인해서 원고들에게 어떤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법관 13명의 의견이 7대6으로 갈렸는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기성회비 반환을 인정하지 않는 다수 의견이었습니다.


■ " 왜 거기서 나와?"... '사법 농단' 문건서 등장한 기성회비

그런데 이른바 '사법 농단' 수사 과정 중에 이 '기성회비 반환소송'이 다시 등장합니다.

2015년 11월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 제목 그대로 당시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와 협상하기 위한 전략이 담겨있습니다.

"사법부 최대 현안이자 개혁이 절실하고 시급한 상고법원 추진이 BH의 비협조로 인해 좌절될 경우 사법부로서도 더 이상 BH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

"단호한 어조와 분위기로 민정수석(당시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일정 정도의 심리적 압박은 가할 수 있을 것"고 적혀있는 점으로 미뤄 재판을 통해 청와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가운데 대통령과 청와대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한 사례로 '기성회비 반환소송'이 언급됩니다.

국공립대학의 기성회비 징수는 적법하고 학생들에게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해 국공립대학이 10조 원이 넘는 기성회비 반환으로 큰 재정적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상황 모면하게 했다고 자평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기성회비 반환 소송 당시 학생 측을 변호했던 하주희 변호사는 "파기 환송을 하려면 법리 검토를 추가로 한다든가, 추가로 달라진 사정이 있다든가 이런 게 있어야 하는 데, 없어서 너무 의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법부는 국가 경제를 이유로 해 법리적인 걸 넘어서 1, 2심과 다른 판단을 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 국회, 법원 모두 학생들 목소리 외면 ... 결국 대규모 부당 지급 적발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수업료에 통합돼 징수되기 시작한 '기성회비'. 1.2심을 뒤집은 대법원의 판결로 국립대학은 대규모 기성회비를 반환해야 할 상황을 모면하게 됐습니다.

등록금 부담이 과도하단 학생들의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기성회비 반환소송.
하지만 정작 국회의 입법·대법원의 판결 과정에서 학생들의 입장은 제대로 담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성회비는 이름만 바뀐 채 학생들의 부담으로 6년 동안 이어져 왔고, 이번 권익위 조사를 통해 교직원의 수당으로 부당하게 지급되기까지 했단 사실도 드러나게 됐습니다.

지난 한 해 39개 국공립대학교가 학생지도비로 집행한 금액은 천 백 억원이 넘습니다. KBS가 추산한 전체 국공립대학 등록금의 10% 정도입니다.

코로나 상황 속,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되는 수업. 지금도 학생들은 등록금을 인하해달라고 소송도 불사하고 있지만, 학교들은 깎을 곳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