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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 대지진 때 해일을 피해 필사적으로 달아나던 사람이나 자동차가 결국 바닷물에 휩쓸리는 장면.. 보신 분마다 모두 안타까운 심정이었을텐데요.. 지금 전해드릴 소식은 그와는 다른 거죠? 네.. 기구치라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인데요.. 자동차에 탄 채로 해일에 휩쓸리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방영됐었는데, 어느날 멀쩡한 모습으로 방송 인터뷰에 나온 기적같은 이야기입니다. 말 그대로 구사일생이었습니다. 권혁주 특파원이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한 해 5천 척의 배가 드나들던 항구도시 이와테현 가마이시, 지금은 유령도시처럼 황폐해졌습니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게 무너져내린 집을 바라보는 기쿠치씨도 당시 쓰나미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녹취> NHK 방송 : “15시 21분, 가마이시 항구의 모습입니다. 항구쪽에서 바닷물이 시내 쪽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대지진 30분만에 밀어닥친 대형 쓰나미, 건물과 주택을 무서운 기세로 삼켜버립니다. <녹취> :"도망가요, 도망가, 위험해요." 기쿠치씨는 피난 가지 않겠다는 아들을 집에 남겨두고 자신이 운영중인 공장으로 가려고 차를 탔습니다. 그러나 차는 곧 물에 휩쓸리고 맙니다. <인터뷰> 기쿠치/생존자 :“점점 물이 올라와서 자동차가 확 하고 저쪽으로 휩쓸렸습니다. 처음에는 떠있는 상태로 쓸려갔어요. 떠다니다가 꽝 했고 그리고 나서 가라앉기 시작했어요.” 옥상으로 올라온 아들의 모습도 잠시 보였지만 순식간에 모두 물에 잠겨 버렸습니다. 그러나 거센 물살에 쓸려가던 그녀에게 운명의 여신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자동차에서 빠져나와 마침내 구조되는 드라마같은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인터뷰> “차 뒤 창문이 깨져 있어서 그 쪽으로 이렇게 헤엄치듯 빠져 나왔어요. 그때 위를 바라보니까 풀 밑이나 바다 밑에서 보는 것처럼 파랗더군요. 파란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파편 조각 같은 것들이 가득 있었고... 올라가서 그 조각을 잡아서 상반신을 걸치고 저기있는 흰색 건물..커튼 보이죠? 2층인데 저기까지 물에 차 있었어요. 저기로 겨우 올라가서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죠. 옥상에 올라갔을 때 전부 바다가 돼 있었습니다. 아들 이름을 계속 외쳤죠. 저쪽 피난 도로에서 이웃이 '유키 군이 여기 있어요' 해서 보니까 아들이 거기 있었어요.” 기쿠치씨의 아들은 헤엄을 쳐서 다른 옥상으로 올라가 목숨을 건졌고 기쿠치씨는 날이 밝은 후 16시간만에 구출됐습니다 <인터뷰> “아침이 돼서야 물이 빠졌는데 물이 빠질 때마다 삐걱 삐걱 소리가 나서 또 건물이 무너지는게 아닌가 해서 많이 무서웠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어요.” 인구 3만9천명의 가마이시, 이번 쓰나미로 모두 천4백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습니다. 이처럼 많은 희생자가 난 것은 가마이시가 믿었던 높이 63미터, 길이 2킬로미터의 거대한 방조제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89년 쓰나미를 막기위해 가마이시가 쌓은 방조제, 지난해에 세계 최대의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마을의 자랑거리였습니다. 지금은 바닷물 속에 잠겨버렸고 군데군데 형체만 겨우 남아있는 거대 제방, 쓰나미의 여파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잘 말해줍니다. 기쿠치씨는 지난주 건어물 가게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운영하던 건어물 공장과 또 다른 가게들은 모두 물에 휩쓸려갔지만 이 곳은 진흙만 들어왔을 뿐 큰 피해는 입지않았습니다. <인터뷰> 기쿠치/생존자 :“이게 우리가 손수 만든 꽁치절임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맛있다고 주문이 와서 보내주고 있지만 이제 없어요.” 기쿠치씨는 더 이상 가마이시산 생선을 팔 수 없게 된게 못내 서운합니다. <녹취>“(미역 줄기는 다 나갔나요?) 미역도 다시마도 수확 전에 이런 일이 나버려서 아무것도 없어요. 중앙에서 거꾸로 갖고 와야 하는 형편이죠. 여기 특산물이 아니라 아오야마산이라든가 홋카이도산이라든가.” 그동안 소식을 몰랐던 이웃 상인들과 만나 오랫만에 그간의 소식을 나눠봅니다. 기쿠치씨는 다행히 피해가 없는 친척 집에서 머물고 있지만 이웃 상인들은 모두 피난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상인 :“프라이버시가 문제죠. 그래도 동료들이 있어서 괜챦지만.” <인터뷰> 상인 : “역시 가족 전부가 함께 살고 싶어요. 그리고 장사가 역시 예전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인터뷰> 상인 :“(가설주택) 처음엔 5월까지라더니 6월, 7월 점점 늦어지고 있어요. 어떻게 될지 몰라요.” 쓰나미가 덮친지 한달 반이 지났지만 이곳 주민 2500명은 아직도 피난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설주택 보급은 택지와 자재 확보가 힘들어 늦어지고 있습니다. 가마이시에도 가설주택이 한창 지어지고 있지만 아기나 노약자 가족이 우선이어서 엄두도 낼수 없습니다. 기쿠치도 마냥 기다릴수 만은 없어 재해대책본부를 찾았습니다. <인터뷰> “(이 지구 5월에 된다고 했습니다만 아직 짓지 않았으니까 언제 쯤 (입주) 예정입니까?) 확실히 말씀 드릴 수가 없네요.” 결국 기쿠치씨는 가마이시가 아닌 다른 지역의 가설주택도 입주할 수 있는 또 다른 신청서를 썼습니다. 어렷을 때부터 수십 년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기쿠치씨, <인터뷰> 기쿠치/생존자 :“예전에는 바다를 보면 마음이 안정됐는데 지금은 무섭고 슬픕니다. 아직도 뭔가 덮쳐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도 기쿠치씨는 바다와 함께 제 2의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역시 아직 내가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살아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걸 찾아가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슬퍼요.” 처음엔 살아 남느라 필사적이었지만 지금은 자꾸 감정이 복잡해져서 더욱 열심히 일을 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희망만을 바라보겠다고 다짐합니다. <인터뷰>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는 역시 건강하고 밝은 척하지만 이 안에 쌓여 있는 것들이 한가득 있습니다. 그래도 힘내서 살아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