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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감정원 노조, '공시제도' 비판한 교수 고소

지난 2일, 대구 동부경찰서에 제주대 경제학과 정수연 교수에 대한 한국감정원 노동조합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대구에 있는 한국감정원 노조가 대체 왜 제주도에 있는 경제학과 교수를 고소했을까?

계량경제학을 전공한 뒤 부동산 정책과 감정평가 분야를 연구해온 정수연 교수는 평소 한국의 부동산 공시제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왔다. 현행 공시제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한국감정원에 대해서도 자주 날을 세웠다.

한국감정원의 주요 업무는 부동산 가격 공시에 관한 것들이다. 현행법상 감정원은 주택 공시가격의 조사와 평가를 전담한다. 부동산 시장을 관리하는 전문 공공기관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1969년 정부출자기관으로 설립된 한국감정원은 1974년 감정평가에 관한 법에 의거해 국내 유일의 감정회사로 인가됐다. 민간회사였던 한국감정원은 한국감정원법이 2016년 시행되면서 지금의 공기업 형태로 바뀌었다.

공시제도의 핵심축을 담당하고 있는 감정원 입장에서, 공시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정수연 교수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소장은 한국감정원이 아닌 감정원 노조가 제출했다. 노조에 정수연 교수를 비판한 이유를 직접 물어봤다.

정 교수를 고소한 이유에 대해 양홍석 감정원 노조위원장은 "정수연 교수가 아무런 근거 없이 한국감정원 소속 직원들을 비전문가로 매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양홍석 위원장은 "합리적 비판은 수용해야겠지만 부동산 평가 업무에 있어 업계를 선도하는 공신력 있는 전문기관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면서 정 교수는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 위원장은 "정 교수에게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답변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법적 대응에 나섰다"면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법적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게 조합원들의 의지라고 덧붙였다.


고소장 살펴보니 'junk data' = '쓰레기 결과물?'

그렇다면 노조가 주장하는 명예훼손은 어떤 내용인지 고소장을 통해 구체적인 사실들을 확인해봤다.

고소장에 적힌 정수연 교수의 명예훼손 행위는 모두 19건이다. 노조가 주장한 명예훼손 혐의의 핵심은 공시가격의 '신뢰도'와 공시가격을 매기는 '전문가'의 자격에 대한 비판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고소장에 언급된 2018년 3월 19일 세계은행이 주최한 '토지와 빈곤 콘퍼런스'에서 정수연 교수의 발언을 살펴보자. 이 콘퍼런스는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고 발표내용도 영문으로 공개됐다.

고소장이 문제 삼은 정 교수의 발표내용은 아래와 같다. 세계은행 콘퍼런스에서 영문으로 발표한 내용을 감정원 노조가 해석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주거용 부동산의 과표를 산정하는 과정에 비전문가들이 스스로 가치산정의 결정 사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한국의 납세자들이 모르고 있으며 검증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비용을 최소화하는 관행은 쓰레기 데이터들을 양산하며 그 데이터들을 기반한 복잡한 모델은 결국 쓰레기 결과물(junk data)을 생산한다."


고소장에서 '쓰레기 결과물'이라고 해석한 부분의 발표 원문은 'junk data'라는 단어였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계량경제학ㆍ통계학에서 'junk data'라는 단어는 부정확하거나 의미 없는 데이터(Inaccurate or useless data), 혹은 '비정밀 데이터'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공시가격의 기초자료가 되는 집값, 땅값 등의 데이터 신뢰성이 낮다는 의미로 'junk data'라는 표현을 사용한 건데,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학술표현을 감정원 노조가 명예훼손의 근거로 삼았다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고소장에서 모욕적인 표현이라고 문제를 삼았던 'garbage in, garbage out' 역시 계량경제학 논문이나 전공서적에 일반적으로 "모형에 문제가 없어도 투입되는 데이터가 부정확하면 그 결과는 정확할 수 없다"는 일종의 학술적 관용어구라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노조는 인터뷰나 기고 등 언론에 실린 정 교수의 주장 17건도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올해 1월 7일 한국경제신문 기사에 인용된 내용을 보면 정 교수의 코멘트는 공공기관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에 가까워 보인다. 아래는 고소된 기사 내용 일부이다.

"감정원이 실거래가의 일정 비율을 공시가격에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산정 공식은 외부에 알려진 적이 없다.”

노조가 문제 삼았던 '비전문가'라는 표현은 어떨까. 정 교수는 여러 학술 발표나 인터뷰 등에서, 국가에서 전문성을 공인받은 '감정평가사'가 감정원에 많지 않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취지의 비판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전문가의 기준을 '감정평가사' 자격으로 삼은 셈인데, 감정원 지사 인력 398명 가운데 감정평가사 자격을 가진 직원은 30% 수준이다.

법률가들은 '비전문가'라는 표현이 형사적으로 명예훼손에 해당하기는 어렵다고 얘기한다. '비전문가'라는 표현 자체가 모호할 뿐만 아니라 비판 내용이 '학술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주대교수회 "양심적 비판활동에 재갈 물리는 행위"

노조의 형사고소 소식이 전해지자 정 교수의 동료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제주대학교 교수회는 18일 성명을 내고 "학자들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에 대해 외부적 간섭이나 침해로 인해 소신껏 연구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알 권리 침해로도 이어진다"며 "노조 측에선 자사를 위해 활동할 권리와 의무가 있지만, 노조활동 역시 학문의 자유를 존중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교수회는 "형사고소가 학자들의 양심적 비판활동에 재갈을 물리는 형태로 비쳐선 안 될 일"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정치권에서도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민주평화당은 11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과거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인 학자를 한국수자원공사 직원이 고소한 것을 두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던 민주당이 같은 행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도 비판에 동참했다. 김현아 원내대변인은 12일 "깜깜이 공시가격 산정으로 국민의 공분은 물론 지자체의 불신마저 초래했던 감정원이 이제는 비겁하게 노조 뒤에 숨어 학자의 자유와 양심마저 겁박하고 나섰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감정원 노조가 속한 금융노조는 민주평화당의 논평에 대해 "이번 고소 주체가 문재인 정부나 집권 여당, 한국감정원 사측이 아닌 '감정원 노조'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정권 혹은 집권여당 지시로 움직이는 허울뿐인 노조로 취급한 것은 심각한 모욕"이라고 재반박했다.

금융노조는 "정 교수가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한국감정평가학회는 민간평가법인 회원사의 이익을 위해 감정원을 적대시해 온 한국감정평가사협회와 매우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정 교수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한국감정원 노동자를 모욕했다면 학자적 양심이 아니라 위선"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국토부 감사받는 한국감정원…공적 책임 다해야

한국감정원은 이번 논란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노조 차원의 집단행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거론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주택 공시가격 오류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현재 국토부 감사를 받고 있는 만큼, 말을 아낀 채 조심하는 분위기이다.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를 부동산 주요 정책으로 꼽은 상황에서, 감정원의 공적 책무는 더욱 커지고 있다. 투명하고 명확한 기준으로 공시가격을 제시하도록 노력할 때 국민들의 신뢰도 회복될 것이다.